커피, 인류 문명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
알코올 중독 인류, 커피로 의존 벗어나
각성 효과 덕분에 촉발된 '인지 혁명'

편집자주최초의 과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과자는 인간 역사의 매 순간을 함께 해 온 셈이지요. 비스킷, 초콜릿, 아이스크림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과자들에 얽힌 맛있는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커피. 픽사베이

커피.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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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산업 혁명을 촉발하고 빈곤에서 벗어났을까. 증기기관, 전기, 인터넷 등 수많은 문명의 이기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일등 공신이 있다. 바로 '커피'다. 커피는 기계나 에너지만큼이나 중요한 '정신의 힘'을 북돋아 세계 경제를 일으켰다.


유럽 부흥 핵심 '커피'…세계 최대 보험 시장도 카페에서 탄생


중동과 오스만 제국 지역에서 향유하던 커피는 15~16세기 무렵 유럽에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산업 혁명이 벌어지기 약 100년 전 일이다. 씁쓸하면서도 향기로운 커피콩은 순식간에 유럽인을 사로잡았고, 서서히 유럽 문명의 대표 주류로 올라섰다.

한때 영국 지식인들이 모이던 에드워드 로이즈의 커피하우스(왼쪽)는 현재 세계 최대의 재보험 시장인 런던 로이즈가 됐다. 로이즈 홈페이지

한때 영국 지식인들이 모이던 에드워드 로이즈의 커피하우스(왼쪽)는 현재 세계 최대의 재보험 시장인 런던 로이즈가 됐다. 로이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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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럽 대도시 곳곳에선 주점 대신 '커피하우스'가 들어섰다.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고, 국제 무역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경제학의 기틀이 잡혔다.


카페의 시초인 커피하우스는 당시 유럽을 대표하던 지식인들이 모이던 광장이자, 무역상이 최신 상품 정보를 나누고 투자 계획을 잡는 브로커였다. 세계 최대의 재보험 시장이자, 오늘날 해상 보험을 주름잡는 '런던 로이즈'도 1600년대 후반 '에드워드 로이즈의 커피하우스'에서 출발했다. 국부론을 펴낸 자본주의의 효시 애덤 스미스는 영국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집필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술 취한 인간, 카페인으로 인지 혁명 일으키다


이 모든 일이 커피의 도입과 함께 촉발된 건 우연이 아니다. 미국 역사학자 마이크 펜더그라스트가 편 '커피의 역사'에 따르면, 코피는 고대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인간의 잘못된 식습관을 뜯어고침으로써 '인지 혁명'을 일으켰다.


인간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곡물 따위를 발효시켜 맥주로 만들어 마셨다. 알코올 성분이 든 맥주는 물의 박테리아 등을 죽여 보존 기간을 늘리는 장점이 있었다. 깨끗한 물 공급이 어려웠던 고대, 중세 당시 인간은 도수 2~3도의 약한 맥주를 물처럼 섭취했다. 아침에는 맥주를 끓여 만든 '비어 수프(Beer soup)'를 먹었고, 고된 밭일 후 맥주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했다.


중세식으로 재현한 비어 수프. 깨끗한 물이 부족했던 중세 시대에는 곡물을 발효해 만든 맥주를 끓여 아침 식사로 먹었고, 물 대신 맥주로 갈증을 풀었다. 에일혼 홈페이지 캡처

중세식으로 재현한 비어 수프. 깨끗한 물이 부족했던 중세 시대에는 곡물을 발효해 만든 맥주를 끓여 아침 식사로 먹었고, 물 대신 맥주로 갈증을 풀었다. 에일혼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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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중세 시대만 해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24시간 내내 취한 상태였다는 뜻이다. 그만큼 인지 기능과 체력이 저하하고, 빨리 지쳤다. 그러나 커피가 농민들에게 공급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펜더그라스트는 "귀족의 음료인 커피가 대중에게 전파되자, 아침 식사는 맥주 수프에서 커피 한 잔으로 바뀌었다"고 썼다. 노동자들의 긴 휴식은 짧은 '커피 브레이크'로 변했고, 커피 특유의 각성 효과 덕분에 일처리는 더욱 빨라졌다. 그만큼 인간은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커피 연구하다 화학도 발전


농장이나 공장을 경영하던 사업가들도 경험으로 커피의 효능을 일찍이 파악하고 있었다. 에드워드 피셔 미 밴더빌트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의 논문 '커피 소비와 건강 적용'에 따르면, 1600년대 농장주는 커피, 설탕, 카카오를 "약물 음식(drug food)"이라고 칭하며 노동자들에게 먹였다.


거듭된 연구 끝에 19세기 말 미, 유럽에서는 인스턴트 커피 추출기가 완성된다. 사진은 1890년대에 발명된 커피 추출기. 스미소니언 박물관 홈페이지

거듭된 연구 끝에 19세기 말 미, 유럽에서는 인스턴트 커피 추출기가 완성된다. 사진은 1890년대에 발명된 커피 추출기. 스미소니언 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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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교수는 "커피는 16~17세기 유럽 문명의 확장을 도왔다"며 "17세기에 이르면 커피는 술을 완전히 대체했고, 의사들은 커피를 모든 질병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음료, 물약, 주사 형태로 환자들에게 주입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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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소비 증가는 해상 무역의 증대로 이어졌고, 심지어 초기 화학의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커피의 효능에 호기심을 가진 학자들이 갖은 방법으로 커피 성분을 분석하며 '과학적 방법론'의 토대를 쌓았기 때문이다. 피셔 교수는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커피 소비와 실험 과학의 발전은 동시에 이뤄졌다"며 "한때 유럽에서 커피는 '중동에서 온 신기한 음료수'였으나, 19세기에 이르면 '인간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 작용'으로 재정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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