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경제포커스]돈 풀린 韓…정책은 막혔다
올 1월 '총통화량' M2 4565조원
작년 3분기엔 GDP 대비 150% 넘어
유동성 규모보다 중요한 건 '구조'
가계부채 비중 높아 금리인상 어렵고
美 금리 차이 탓 인하도 부담
유동성은 결국 정책 유연성 제약
경제학에서 유동성은 자산을 손실 없이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그래서 '과잉 유동성'은 말 그대로 유동적인 금융 자산이 국민경제에 필요한 적정 수준을 웃도는 상태로, 통화가 과잉 공급된 상황을 의미한다.
자산가격 상승과 관련한 과잉 유동성 논란은 꽤 오래된 얘기다. 시중에 넘치는 유동성이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불안 요인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한국은행은 줄곧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은행은 최근 통화량 증가 폭이 장기 평균보다 높은 수준은 아니며, 특히 과거 금리 인하기에 견줘 보면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환율 상승 압력은 유동성 요인보다는 해외 증권투자 확대와 수출기업의 외화 보유 선호 등 외환시장의 수급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이어진다.
통화량 지표 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총통화량인 'M2'다. 'M1'이 현금 외에 즉시 현금이 될 수 있는 '요구불예금' 정도를 포함한다면, M2는 M1에 '머니마켓펀드(MMF)'와 2년 미만의 정기 예금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을 더한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세계 경제지표를 제공하는 사이트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M2는 지난 1월 4565조원이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13일 발표한 '2026년 1월 통화 및 유동성'에선 4108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총생산(명목 GDP) 대비 M2 비율은 지난해 3분기에 153% 수준이었다. GDP 대비 M2의 비율이 150%를 넘는다는 건 경제 규모에 비해 시중에 풀린 돈이 매우 많다는 뜻이다. 이걸 흔한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계 주요 국가들 가운데 이 수치를 넘어서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일본이 약 240%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오랫동안 시행된 양적 완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210% 정도인 중국은 부채 주도의 성장이 지속되면서 유동성이 급격히 팽창한 결과일 것이다. 반대로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 구조로, 기업이 은행보다 주식이나 채권으로 자금조달을 하는 경우가 많은 미국은 그렇게 달러를 찍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71% 수준에 불과하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10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M2가 비교적 많은 배경에는 구조적으로 몇 가지 이유가 겹쳐 있다. 본래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우리나라는 M2가 GDP보다 적어 오히려 유동성이 부족했다. M2가 GDP를 넘어선 건,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제 구조가 바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은행 의존도가 높아졌고 동시에 가계대출도 늘었다. 특히 부동산 금융 확대는 통화량을 직접 밀어 올렸다. 물론 의도적인 통화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장기간의 저금리가 대출 확대로 이어지면서 통화량 증가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에서 M2가 GDP를 확실하게 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중반 이후다. 유동성은 늘어났지만, 통화량의 증가와는 달리 실물 성장은 제한적이어서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2010년 이후 M2의 증가 속도는 성장의 속도보다 항상 빨랐다. M2 증가율이 성장률보다 높다는 건, 돈이 실물보다 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통화량 규모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순 없다. M2와 GDP의 규모를 비교하는 것만으로 유동성이 과도하다거나 너무 적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려를 많이 제기하는 유동성과 자산 시장의 관계는 흔히 생각하듯 결론이 명쾌하게 내려진 문제는 아니다. 부동산 가격과의 연관 관계만 해도 그렇게 분명하지는 않아서 유동성이 늘어난다고 무조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건 아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주택가격 하락기에는 통화량을 늘리더라도 주택가격이 반드시 상승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역대 정부별로 M2 증가 규모를 보면 노무현 정부 406조원, 이명박 정부 555조원, 박근혜 정부 596조원, 문재인 정부 1248조원, 윤석열 정부 594조원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재정 확대와 초저금리를 유지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만 제외하면 정부의 이념적 지향에 따른 통화량 증가의 차이는 거의 없었지만, 부동산 시장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코스피가 뛰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해부터였지만 M2가 GDP의 150%를 넘은 건 이미 2020년부터였다. 유동성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그것 때문에 주가가 뛰었다고 하는 건 무리다. 유동성의 규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일 것이다. M2 증가는 실제로는 대부분 신용, 그러니까 부채로부터 비롯된다. M2는 결국 경제 주체들이 빚을 많이 얻어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6500조원의 국가 총부채 중에서도 특히 부담스러운 건 2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다. 정부부채는 세금이나 통화정책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지만, 가계부채는 경기 충격이나 금리 변화에 취약하다. 절대적 수준만 보면 유동성 규모가 과도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구조까지 보면 과도하게 기울어져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유동성은 우리 경제의 양극화 구조를 강화하기도 한다. 유동성 증가가 경기 전반의 개선보다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면 유동성 증가의 수혜는 자산 보유층에게만 돌아가게 된다.
한국은행 총재가 이제 곧 바뀐다. 유력 외신인 '블룸버그 통신'은 오는 21일 취임할 것으로 보이는 신현송 새 한국은행 총재를 통화 긴축을 선호하는 '매파'로 분류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서는 매파와 비둘기파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쉽게 금융정책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촉발된 고유가가 고물가로 이어져 금리를 올리고 싶은 상황이 된다고 해도 가계부채 규모를 생각하면 금리 인상은 간단한 일이 아니고, 반대로 내수 진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다고 해도 1% 포인트가 넘는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생각하면 금리 인하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과잉 유동성의 문제는 유동성 자체보다는 정책의 유연성을 제약한다는 점이 크다. 우리나라의 M2는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매달 30조원 이상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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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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