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폭행 사건 매년 3000건 넘게 발생
택시 '보호격벽' 설치 지원도 사실상 중단
처벌 강화됐지만 현실은 여전히 솜방망이

#.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5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김모씨(68)는 최근 백미러를 여러 차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늦은 시간 만취한 승객에게 이유 없이 수차례 폭행당한 뒤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다짜고짜 '신고해서 면허를 취소시켜버린다'는 승객의 폭언이 아직도 선하다. 김씨는 "덩치가 큰 손님을 야간에 태우고 외곽 지역으로 갈 때면 두려워서 심장이 쿵쿵 뛴다"며 "좁은 차 안에서 등 뒤에 누가 탔는지 모르는 채 운전하는 게 고역"이라고 토로했다.


"운전대 잡기 무섭다"…달리는 차 안 무방비한 택시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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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운전자를 폭행하면 가중처벌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만취한 승객이 난동을 부리는 등 택시 기사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특정범죄가중법상 운전자 폭행 건수는 지난해 3284건에 달했다. 2023년 3947건, 2024년 3498건 순으로 줄고는 있지만, 여전히 연평균 3000건을 크게 웃돈다. 지난해 수치를 기준으로 매일 운전자 9명이 폭행당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 양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달 5일 충남 아산시에선 70대 택시 기사가 50대 승객에게 폭행을 당해 안면 함몰과 뇌 골절 등 전치 12주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살인미수를 적용했다. 경기 안산시에서도 지난달 21일 40대 남성이 휴대전화로 기사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해 전치 8주 중상을 입혔다.

택시 기사를 물리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보호격벽' 설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보호격벽은 택시·버스 등 차량에서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하는 투명 격벽이다. 시내버스는 2006년부터 설치를 의무화해 설치율이 100%에 달하지만, 택시는 강제 규정이 없다. 2024년 기준 7만여대에 달하는 서울 택시 중 보호격벽을 설치한 건 700여대로 1%에 불과하다.


한때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보호격벽 설치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중단됐다. 택시 기사가 직접 비용을 부담해야 하다 보니 참여율이 낮았다. 서울시는 2014년·2019년·2021년에 각각 30대·236대·493대를 지원했으나 이후로는 예산 미확보와 수요 부족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택시 운전자 대다수가 보호격벽 설치 필요성 자체에는 동의했지만, 비용이나 답답하다는 등 이유로 설치를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운전대 잡기 무섭다"…달리는 차 안 무방비한 택시기사들 원본보기 아이콘

솜방망이 처벌로 피해가 줄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져 다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본지가 최근 선고된 운전자 폭행 판결문 10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대부분 초범이거나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또는 가벼운 벌금형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운전 중인 기사의 얼굴을 6차례 때린 승객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기사의 팔을 잡고 주먹을 휘두른 가해자 역시 폭력 전과가 있었지만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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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조직국장은 "택시는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단둘이 마주해야 하는 특성상 범죄에 매우 취약하다"며 "경미한 폭행이라도 엄중히 처벌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하고 격벽 설치에 대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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