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열풍 속 걷는 남도 유배길 <6·끝>
전문가가 본 고립과 창조의 인문학 서사
개별 유적지 넘어선 통합 연계망 시급
현대인 치유 연계 K-인문학 특화 육성도

편집자주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한민국에 '유배 문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권력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이 마주했던 고립과 절망은 역설적이게도 남도의 너른 품 안에서 위대한 학문과 예술로 승화됐다.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는 영화 속 서사를 넘어 실제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광주·전남의 주요 유배지를 톺아본다. 척박한 땅을 희망의 터전으로 일궈낸 선비 정신과 오늘날 '예향 남도'의 뿌리가 된 유배 문화의 가치를 총 6편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지난달 19일 오후 광주 북구에 위치한 환벽당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다. 환벽당은 정철이 소년시절부터 청년으로 자라 벼슬을 할 때까지 11년간 머물면서 스승 김윤제에게서 공부를 배운 곳이다. 민현기 기자

지난달 19일 오후 광주 북구에 위치한 환벽당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다. 환벽당은 정철이 소년시절부터 청년으로 자라 벼슬을 할 때까지 11년간 머물면서 스승 김윤제에게서 공부를 배운 곳이다. 민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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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남도 산천에 쏘아 올린 '고립'의 화두가 뜨겁다. 권력에서 밀려난 지식인들이 절망을 딛고 피워낸 학문과 예술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지역 문화 관광 산업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가 본 남도 유배길…"절망이 창조로 바뀐 거대한 박물관"

전문가들은 남도 유배지가 가진 가장 큰 무기로 '스토리텔링의 힘'을 꼽았다. 이영주 지방관광콘텐츠연구소 소장은 남도 유배길 500리를 "절망이 창조로 뒤바뀐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라고 정의했다.

이 원장은 "나주 흙바닥에서 민본을 외친 정도전, 강진 다산초당에서 500권의 실학을 완성한 정약용, 담양과 진도에서 독보적 예술을 빚어낸 정철과 허련의 서사는 단순한 형벌의 기록이 아니다"라며 "극단의 고립 속에서 예술과 학문을 꽃피운 이들의 집념은 그 자체로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울림을 주는 인문학적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 원장은 "화순에서 조광조의 시신을 거둔 양팽손이나, 유배객을 따뜻하게 품어준 강진 주막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남도 특유의 '포용과 연대'가 유배 서사에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에 위치한 사의재에 단체 관람객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민현기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에 위치한 사의재에 단체 관람객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민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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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은 서 말인데 꿰지 못해"…전문가들이 지적한 연계망 부재

하지만 전문가들은 훌륭한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뼈아픈 진단도 내놨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관광객들이 "시설 관리는 훌륭하지만, 연계된 먹거리나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의미다.

김민환 문화관광해설사는 "각 지자체가 유적지 복원과 잔디 관리 등 시설 유지에는 탁월한 성과를 보였지만, 관광객을 머물게 하는 체류형 콘텐츠는 낙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의재나 운림산방을 보고 난 뒤 결국 식사와 숙박을 위해 목포나 광주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며 "유적지들이 개별적인 '점'으로만 존재할 뿐, 이를 하나의 테마로 연결해 시너지를 내는 '선'과 '면'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K-고립' 띄워야…현대인 치유할 웰니스 관광 특화"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에서 부부 관람객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는 모습. 민현기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에서 부부 관람객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는 모습. 민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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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법은 개별 유적지를 아우르는 통합 브랜딩과 현대적 재해석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번잡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고립'을 치유의 상품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영주 소장은 "영화 '왕사남'의 무대인 영월이 고립의 서사를 성공적으로 브랜드화했듯, 전남 역시 지자체 간 경계를 허물고 '남도 유배 500리 길'이라는 통합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며 "관광객이 다산의 삼근계를 직접 체험하고, 유배객의 소박한 식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배 미식 투어'를 즐길 수 있는 몰입형 관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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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해설사 역시 'K-고립'의 글로벌화 가능성을 역설했다. 김 이사는 "현대인들은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며 스마트폰을 끄는 '디지털 디톡스'를 원한다"며 "남도 유배길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템플스테이와 인문학적 사색이 결합된 관광지로 특화한다면, 'K-인문학'을 경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남취재본부 민현기 기자 hyunk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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