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는 영혼이 없다
김숙자 전 여성가족부 국장
공직생활 37년의 회고록

[빵 굽는 타자기]여가부 공직자가 돌아본 37년, 치열했던 정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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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가 내세운 주요 공약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 폐지'였다. 윤 후보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등 여러 정치권 인사들도 여가부 폐지를 반복적으로 거론해 왔고, 부처는 그때마다 존폐 논란 속에서 부침을 겪었다. 부처 특성상 젠더 갈등의 중심에 서는 일도 잦았다. 여가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라는 비판과 함께 "하는 일이 없다"는 오해에도 자주 휩싸였다.


그러나 여가부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성폭력, 경력단절 등 여성 정책뿐 아니라 가족, 영유아 보육, 다문화·한부모·학교밖청소년 지원 등 기존 복지체계가 미처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담당했다. 이는 대중이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영역이자, 한편으로는 관심 밖에 놓여 있던 분야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많은 여가부 공무원들은 미혼모, 학교밖청소년, 결혼이민자 등이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장에서 애쓰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숙자 전 여가부 가족정책관 역시 22년간 영유아 보육, 아이돌봄서비스,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 주요 복지 정책을 추진해온 인물이다. 서울시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유아 보육 업무 이관을 계기로 여가부에 파견됐고, 보육 예산 구조 개편안을 완성하기 위해 부처에 남았다. 이후 민간 보육시설 이용 아동도 국공립 시설 이용 아동과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확대하고,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평가인증제를 도입했다.


오늘날 많은 '워킹맘'이 이용하는 직장어린이집과 아이돌봄서비스 역시 그의 노력 속에서 발전해왔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기준을 완화하고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해 제도의 확산을 이끌었으며, 2007년 도입된 아이돌봄서비스는 부처 이관과 예산 삭감 등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보완·유지됐다.

다만 정책 논의 과정에서 현장을 아는 공직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정치권의 영향 속에서 정책이 왜곡되기도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아이돌봄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지만, 제도는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여가부는 다른 중앙부처에 비해 예산 규모가 작고 규제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정책 수립 과정에서 소외되기도 했다. 저자 역시 회의 배제, 반복적인 예산 삭감, 사업 이관 등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그는 정책을 완수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부처를 직접 찾아가 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그는 그 원동력에 대해 "제도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현장의 요구에 부합해 작동해야 한다"고 회고했다.


이 책은 세 아이를 키운 워킹맘이자 여가부 공무원의 공직 경험을 담은 기록이다. 동시에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책을 만들어가는 공직자들의 삶을 비추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이 이어지는 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 복지는 더욱 촘촘하고 견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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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는 영혼이 없다|김숙자 지음|북바이북|288쪽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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