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당국, 우크라 공습 대비라 해명
中 만리방화벽 통제체제 구축 준비

모스크바. 게티이미지뱅크

모스크바. 게티이미지뱅크

AD
원본보기 아이콘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 인터넷 차단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서구 플랫폼은 물론이고 러시아인들이 즐겨 쓰는 텔레그램까지 불시에 차단되는 사례가 3월 들어 급증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 드론 공습 차단을 위한 보안 조치'라고 해명하지만, 이를 믿는 시민은 거의 없다.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SNS의 파급력을 목격한 푸틴 정권이 사전 예방 차원에서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크렘린궁 인근 화재 현장, 기자들 인터넷 끊겨 유선전화로 보도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최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궁 인근 쇼핑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여러 방송사 취재진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기사와 영상을 송고하려던 순간, 해당 지역 인터넷이 일제히 끊겨버렸다. 기자들은 결국 유선 전화로 방송국에 소식을 전해야 했다. 스마트폰도, 노트북도, 모바일 데이터도 모두 먹통이 된 21세기 대도시 한복판에서, 취재 현장은 70년대로 되돌아간 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러시아 당국은 논란이 일자 "우크라이나 드론이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표적을 인식할 수 있어 긴급 차단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드론 항법 체계와 민간 인터넷 망은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이 같은 해명은 기술적으로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접속 문제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본격적으로 심해졌다. 러시아 내에서 전반적인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고,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주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용량이 큰 동영상은 사실상 업로드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모스크바뿐 아니라 러시아 주요 대도시에서도 예고 없이 인터넷이 일시 차단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 특히 청년층의 불만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단순한 보안 목적이 아니라, 혹시라도 반정부 시위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차단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촉발됐을 때 이란 정부가 수시로 인터넷을 차단하고, 일부 지역에선 전기까지 끊어 외부와의 연락을 원천 봉쇄한 전례가 있다. 당시 이란에서는 시위 사진이 낡은 구형 카메라로 촬영된 저화질 이미지만 외부로 유출될 정도였다.

이란 반정부 시위의 교훈…권위주의 정권들의 공통된 학습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인터넷 통제 강화를 이란 사태에서 비롯된 권위주의 정권들의 공통된 학습 효과로 분석한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처음부터 정권 교체를 목표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민생고와 경제적 불만에서 비롯된 시위가 SNS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개입까지 초래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 과정을 지켜본 러시아·중국·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은 SNS가 체제 위협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들 국가에서 이란의 사례는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생생한 교재가 됐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내에서도 인터넷 통제 강화의 직접적 계기로 2023년 프리고진 반란 사태가 꼽힌다. 당시 푸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바그너 그룹 수장이었던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키자, SNS에는 그를 지지하는 영상과 글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 사건은 러시아 당국에 SNS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든 분기점이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러시아의 인터넷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해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아직 큰 격차가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인터넷에 관대한 편이었다. 구글, 유튜브 등 서구 플랫폼을 차단한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는 서구 인터넷 생태계를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해왔다.


중국의 인터넷 통제 체계, 이른바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은 4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구축된 견고한 시스템이다. 화웨이가 주도적으로 개발한 이 시스템은 민관이 사실상 하나의 통제 체계 아래 움직이는 중국의 독특한 구조 덕분에 가능했다. 중국의 주요 인터넷·IT 기업들은 대부분 국영이거나 정부의 영향권 아래 있어, 당국의 지시가 내려지면 즉각 따를 수 있는 구조다.


반면 러시아는 이제 막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기 시작한 단계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중국 수준의 인터넷 통제 체제를 갖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러시아 당국이 민간 통신망에 대한 통제 범위를 꾸준히 시험하고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중국식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단기 수혜' 뒤에 가려진 러시아의 중장기 불안…중동 영향력 상실 우려

TASS연합뉴스

TASS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이란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는 표면적으로 최대 수혜국으로 꼽히기 때문에 이러한 푸틴정권의 인터넷 차단은 쉽게 이해가지 않을 수 있다. 러시아의 경기가 좋아지면 푸틴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으로 국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러시아산 석유는 인도 등지에 공급을 늘리며 수출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도 이란 전쟁 이후 다소 이완된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 내부에서는 중장기적으로는 이번 이란 전쟁에 따른 후폭풍 우려가 적지 않다. 가장 큰 걱정은 중동에서의 영향력 상실이다. 러시아는 이미 시리아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반정부군에 의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서 시리아 내 군사 기지와 거점을 잃었고, 친미 성향의 새 정권이 들어서며 러시아의 입지는 크게 약화됐다. 여기에 이란마저 정권이 흔들리거나 붕괴될 경우, 러시아는 중동에서 발붙일 곳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이란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다. 이란이 미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간다면 러시아 본토 안보에도 직접적 위협이 된다. 더욱이 이란과 인접한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핵심 후방 지역이다. 이 지역이 외부 위협에 노출될 경우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미국이 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서 에너지 수출을 대폭 늘린다면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은 미국에 완전히 넘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단기 유가 수혜가 중장기 에너지 지위 추락으로 반전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러시아 내부에서 조용히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인터넷 통제는 앞으로 어디까지 강화될까. 전문가들은 러시아 당국이 일반 시민의 일상적 인터넷 사용을 전면 차단하는 극단적 조치는 당분간 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러시아 인터넷 당국의 주된 타깃은 전선 상황을 전달하는 유튜브 채널, 전쟁에 비판적인 인터넷 매체 등 여론을 흔들 수 있는 콘텐츠다. 러시아군의 실제 피해를 보도하거나 '졌는데 이겼다'는 관영 매체의 거짓 전황을 반박하는 영상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의 실제 지지율이 여전히 높다는 점도 전면적 차단을 자제하는 요인 중 하나다. 러시아 내에서 현재 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매체는 극히 드물다. 반정부 활동을 해온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잇달아 탄압을 받은 환경에서, 인터넷을 통한 직접적 정권 비판은 쉽지 않다.


과도한 차단이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네팔에서는 정부가 약 일주일간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다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면서 오히려 정권이 붕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터넷이 이미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자리잡은 상황에서, 섣부른 차단은 시민의 불만을 직접 정권 비판으로 전환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러시아 당국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AD

결국 러시아의 인터넷 통제는 전면 차단이 아닌 '수위 조절식 압박'의 형태로 서서히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터넷이 생활 인프라로 자리잡은 현대 사회에서 중국식 만리방화벽으로 가는 길은 수십 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러나 푸틴 정권이 조금씩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인터넷 끊겼어?" 스마트폰, 노트북 다 먹통…순식간에 70년대로 돌아간 모스크바[시사쇼] 원본보기 아이콘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