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금융권 화두는 '생산적 금융'이다. 올해 1분기(1~3월)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전년 말보다 6조3000억원 넘게 늘어났다. 대기업 대출도 8조7127억원 늘었다. 가계대출은 조이고 기업 등 생산적인 부문에 대출을 늘리라는 정부 방침에 은행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압박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만 돈이 쏠리는 흐름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뭐가 생산적 금융이냐'는 판단은 각 은행의 몫이 됐다. 시중은행 임원은 "영업 현장에서 그때그때 알아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겉으로는 평범한 제조업체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인공지능(AI) 기업에 납품하는 3차 협력사일 수 있다"며 "이런 부분들을 현장에서 고려하면서 집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영세 소상공인이라도 공급망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첨단산업 생산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면 생산적 금융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생산적 금융'이라는 화두만 있을 뿐, 그 정의에 대해선 공통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아직 현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생산적 금융을 집행하고 이를 실적으로 집계할지에 대한 명확한 세부 지침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각 은행은 자체 기준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여신 담당 직원을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배포했고, KB국민은행은 생산적 금융의 정의를 정량·정성 기준으로 구체화해 내부 정책에 반영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전략적 모호성'에 기인한 상호 방치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은 정책 성과를 은행은 실적 홍보를 원하기 때문에 생산적 금융의 정의를 엄격히 제한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은 각자에 유리한 기준으로 '우리가 지원 규모 1위'라고 내세울 수 있고, 정부도 집계 숫자가 클수록 정책 성공을 홍보하기 좋다. 기준이 모호할수록 '내가 하면 생산적 금융'이라는 식의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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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된 기준 없이 집계되는 실적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다. 똑같은 대출에 어떤 은행은 생산적 금융으로 잡고 다른 은행은 제외할 수도 있다. 정부 발표든 은행 홍보든 숫자에 대한 의구심과 '실적 뻥튀기' 의혹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공통의 잣대가 없으면 비교와 분석도 어렵다. 세부 분류 기준과 일관된 실적 평가 잣대가 있어야 생산적 금융 대전환으로 우리 사회의 자금 흐름이 정확하게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기록하고, 평가하고, 분석하는 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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