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관세 시즌2]트럼프 입맛에 맞춰질까…막강 301조 조사에 쏠린 눈
"국제무역의 세계에선 상대국을 일방적으로 압박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힘의 논리'를 법의 형태로 만든 것과도 같다(For international trade, it was the law of the frontier)."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을 역임한 앨런 윌리엄 울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시도는 왜 정당성을 갖게 됐나'라는 분석 보고서를 통해 1970년대 제정된 미국 무역법 301조(Section 301)를 두고 이같이 평가했다. 직역하자면 '개척지의 법'이라 한 것인데, 이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19세기 미 서부 시대에 있을 법한 강력한 법이라는 뜻이다. 현 국제 정세에 대입하면 다자 규범에 따른 분쟁 해결보다 미국의 일방적 압박에 무게를 실은 장치라는 의미로 분석된다. 이 법을 통한 조사 결과에 각국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 여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상호 관세를 합법화 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301조로 다시 압박, 조사 결과 주목
이 법을 제정할 당시 미국은 무역협정만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해외의 불공정한 제품 기준, 지식재산권 침해, 서비스 장벽, 투명성 부족, 비효율적인 분쟁 해결 절차 등에 직면해 있다. 이에 의회는 국제 규정 위반 여부와 별개로 미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울프 선임연구원은 "301조는 협상 도구로 만들어졌고, 미국에 협상력을 제공하는 수단"이라며 "관행의 철폐 또는 이에 상응하는 양보를 받아내도록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301조를 활용하려는 의도는 의회로부터 명확한 권한을 받지 않은 채 거의 모든 수입품에 광범위한 관세를 다시 부과하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울프 선임연구원은 오는 7월 24일 이후부터 이 법을 통한 새로운 관세 정국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조항을 주목했다. 현재 미국은 무역법 122조(Section 122)를 동원해 임시로 10%의 보편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치는 7월 24일 만료될 예정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301조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으며 이달 말과 5월 초 공청회를 연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조사 기간과 관련한 질문에 "150일 기간을 인식하고 있다"며 "목표는 122조 관세가 만료되기 전에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의견 반영될까
미국은 한국 등을 대상으로 301조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조사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전 조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해처럼 트럼프 대통령 입맛에 딱 맞는 방식으로는 조치하지 못할 것"이라며 "전임 대통령들이 활용했던 관세 인상 수단인 232조와 301조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미 적용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우리도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32조는 대통령에게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한국은 철강 쿼터(수출량 제한)를 받아들이는 대신 25% 관세를 면제받는 등 이미 이 법의 위력을 실감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맛에 맞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보통 사전 조사는 1년 이상 걸리는데 150일 만에 마치겠다는 것은 미국이 결론을 예단하고 이에 맞춰 조사를 일방적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며"빠듯한 시간 내에 공청회에서 조사 대상국들이 얼마나 입장을 잘 대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짚었다.
이어 허 교수는 "최근 미국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청에 한국이 응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트럼프의 불만이 301조 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고 했다. 그는 "이란 전쟁으로 인해 미국 내 경기와 유가도 불안정한 상황이라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큰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반전을 꾀하는 카드를 꺼내야 하다 보니 관세 조사가 졸속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장은 "지난해 상호관세는 여러 품목에 일괄적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큰 망치' 같은 모습이었다면 이번 301조는 선별적이라는 점에서 '표적 관세'라고 볼 수 있다"며 "품목 수는 줄었지만, 관세율이 나라마다, 품목별로 다르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무역합의 이행을 위한 압박카드일 수도
트럼프 행정부가 301조를 단순한 관세 부과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용 압박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커스 놀런드 PIIE 부소장은 동아시아포럼(EAF)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301조 등 다른 법적 수단으로 동맹국 등을 계속 압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년전인 '해방의 날(4월2일)'에 본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뒤, 일본·한국·대만 등으로부터 받아낸 양자 합의를 이행하도록 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301조를 활용한 이번 시도가 불발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122조에 따른 임시 관세 조치가 끝나기 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조사 결과와 후속 조치를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 에버렛 아이센스태트 전 트럼프 행정부 무역 당국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301조 조사는 통상 완료까지 6~8개월이 걸린다"며 "이번 일정은 빠른 편"이라고 평가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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