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많이 오지만 적게 쓴다" 한국 관광의 딜레마
외국인 2000만명 시대, 관광수지 15조 적자
요즘 해외여행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짧은 연휴마다 공항은 인파로 넘치고, 주말을 이용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를 다녀오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고물가와 환율 부담에도 여행 수요는 꺾이지 않는다. 다른 소비를 줄이더라도 여행에는 지갑을 여는 '선택적 소비'가 자리 잡았다. 여행은 사치가 아니라 '생활의 기본값'이 됐다.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이미 20여년 전 21세기를 '관광의 일상화' 시대로 규정했다. 정착의 시대를 지나 인류가 다시 이동 중심으로 살아가는 '재유목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진단이다. 과거 관광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면, 이제 이동은 삶의 일부가 됐다. 일하고, 쉬고, 소비하는 모든 과정이 이동과 결합한다. 이동 자체가 경제가 된 셈이다.
BTS컴백 공연을 계기로 서울을 찾은 외국인관광객들이 늘어난 가운데 23일 서울 경복궁 일대는 관광객들이 타고온 버스들로 북적이고 있다. 2026.3.23 조용준 기자
한국 관광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1893만70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관광 수입 역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관광수지는 15조원 넘는 적자를 냈다. 관광객은 늘었지만, 수익은 남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 1인당 지출액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보다 낮아졌다. 방문객 수는 늘었지만 개별 소비는 줄어든 것이다. 면세점 중심의 대량 쇼핑은 힘을 잃었고, 체류 기간이 짧은 크루즈 관광객 비중이 늘면서 소비는 얇아졌다. '많이 오지만 적게 쓰는' 관광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인의 해외 소비는 늘고 있다. 해외 출국자는 2955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일본 방문객만 900만명을 넘어섰다. 해외여행에서는 지출을 아끼기보다 미식·쇼핑·체험에 집중하는 '가치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결국 인바운드는 저부가가치, 아웃바운드는 고부가가치가 형성된 셈이다.
해외 주요 관광국의 전략은 다르다. 관광수지 흑자가 30조원에 달하는 프랑스는 관광객 수보다 1인당 지출 확대에 초점을 맞춘다. 농촌 체험, 스포츠 관광, 고급 숙박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체류 기간을 늘리고 소비를 유도한다. 일본 역시 '관광 입국'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면서 지방 중소도시까지 관광 자원으로 키웠다. 교토와 오키나와를 넘어 가나자와, 다카마쓰, 유후인 등으로 관광 동선을 확장했다.
국제 평가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관광발전지수에서 한국은 14위를 기록한 반면 관광정책과 기반 조성은 61위에 머물렀다. 관광객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소비로 연결하는 정책 설계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관광은 단순한 서비스업을 넘어선다. 10억원 투자당 15명 이상 고용을 창출하는 고용 산업이자, 외화 유입 효과 역시 높은 수출 산업이다. 특히 외화가득률은 제조업보다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교통·숙박·음식·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 걸쳐 파급 효과를 낳는다.
한국 관광은 여전히 서울과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고, 쇼핑 중심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장기 체류를 유도할 콘텐츠도 충분하지 않다. 관광객 수 확대에 초점을 맞춘 정책의 한계다.
의료 관광과 같이 체험과 서비스를 결합한 고부가가치 모델을 확대하고 K팝·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를 실제 소비로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관광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소비하느냐'로 경쟁하는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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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3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양적 확대만으로는 관광수지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이동은 충분히 늘어났다. 앞으로는 그 이동을 어떻게 소비로 전환할 것인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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