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격 모니터링하고 사재기 등 불법 단속

지난 2일 오후 찾아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약국. 얼마 전까지 계산대 옆 판매대에서 묶음으로 팔던 투약용 플라스틱 약통들이 자취를 감췄다. 영유아 아이들에게 가루약과 시럽을 섞여 먹일 때 사용하는 제품이지만 당분간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소문에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이 약국의 약사는 "당장 처방약을 담을 약통도 모자랄 판인데 겨우 한 개 백원짜리 약통을 더 비싸게 팔 수도 없는 노릇이라 차라리 팔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일 JW중외제약에서 열린 '수액제 등 수급 관련 현장방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산업통상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HK이노엔, JW중외제약, 녹십자MS, 대한약품공업, 제약바이오협회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일 JW중외제약에서 열린 '수액제 등 수급 관련 현장방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산업통상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HK이노엔, JW중외제약, 녹십자MS, 대한약품공업, 제약바이오협회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AD
원본보기 아이콘

중동 전쟁으로 발생한 석유제품 수급 차질이 일선 의료 현장의 필수 소모품 공급난으로 번지고 있다. 폴리염화비닐(PVC),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등 나프타에서 추출되는 석유화학제품 원료가 의약품 포장재와 수액제 용기, 플라스틱 약통 등의 핵심 소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일부 병원은 의료기기 공급업체들로부터 일회용 주사기와 주삿바늘, 위생장갑 등의 가격을 조만간 10~20% 인상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병원마다 통상 2주~한달여분 사용량을 재고로 갖고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당장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와 혼란을 줄 수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PE 등 합성수지로 만드는 수액백 시장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수액제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고 회복을 돕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대체 불가능한 필수의약품이다. JW중외제약 등 수액 용기까지 자체 생산하며 수액제를 공급하는 주요 제약사는 정부 당국과 긴밀하게 소통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나프타 수입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고, 원료도 수개월 분의 재고를 비축하고 있긴 하다"며 "하지만 원자재 국제 거래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공급가도 줄줄이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를 운영 중인 의료기관들도 원료 수급 문제를 점검 중이다. 통상 MRI 장비 1대당 냉각제로 약 1500~2000L의 액체 헬륨이 필요한데, 이란 전쟁 이후 국제시장에선 헬륨 공급 차질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다만, MRI 헬륨은 약 6개월에 한 번 충전하는 데다 대다수 병원이 장비회사와 장기 유지보수 계약을 맺고 있어 현재까지 가동 중단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전날까지 "헬륨 수급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확인했다.

AD

정부는 의료 현장에 진료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용품 가격을 모니터링하고 사재기나 매점매석 등 유통과정의 불법행위도 단속한다는 방침이다. 또 나프타 추경 등을 통해 원가 상승을 보완할 수 있는 재정 지원도 추진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수급 불안정 품목에 대해 대한병원협회 등 6개 의료단체로부터 생산율·재고·가격 동향을 매일 보고 받고 있다"며 "꼭 필요한 수술이나 치료에 영향이 없도록 상황을 긴밀히 관리하고 문제에 신속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박정연 기자 j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