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강국 틈새서 시작된 요리봇 경쟁
데이터·원가·생태계가 성패 좌우
자동화 넘어 ‘K-레시피’ 경쟁력도 고민해야

편집자주전국 80만 개에 달하는 외식업체 가운데 상당수는 사장과 가족, 몇 명의 아르바이트 인력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이 구조가 더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건비는 오르는데 사람은 부족하고, 가까스로 인력을 채용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사람에 의존하던 주방이 '기계 중심 구조'로 전환될 수 있을까. 아시아경제는 5편에 걸쳐 요리봇과 관련한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의 현실과 미래를 점검해본다.
"국가별로 로봇 산업의 접근 방식은 다릅니다. 미국은 범용 로봇과 방산에 집중하는 흐름이 강하고, 중국은 인건비가 싸고 부품 등 하드웨어가 강점이죠. 조리 영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조 강국인 일본은 창업 생태계가 비교적 뒤처져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요리봇 분야라는 틈새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중국 손 뻗기 전 '틈새 장악' 서둘러야…한국 요리봇 승부처는 'K레시피' [흑백요리봇]⑤
AD
원본보기 아이콘

한국의 요리봇 산업 경쟁력을 묻자 국내 벤처캐피털(VC) 캡스톤파트너스의 조성근 책임심사역이 내놓은 진단이다.


국가별로 보면 요리봇을 산업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은 아직 제한적이다. 각국이 집중하는 영역도 다르다. 미국은 범용 로봇과 방산, 중국은 제조 자동화에 무게가 실린 만큼, 조리 영역은 상대적으로 틈새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이 구도가 오래 유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테슬라 옵티머스, 피규어 AI 등 휴머노이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로봇의 적용 범위 자체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 심사역은 "휴머노이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 조리까지 연결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에니아이 연구실에서 '알파그릴'이 불판에서 익은 쇠고기 패티를 들어 쟁반으로 옮기고 있다. 김대현 기자

서울 성동구 에니아이 연구실에서 '알파그릴'이 불판에서 익은 쇠고기 패티를 들어 쟁반으로 옮기고 있다. 김대현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최재훈 LB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도 비슷한 시각을 내놨다. 그는 최근 중국 선전과 항저우의 휴머노이드 기업들을 방문한 뒤 “중국이 일부 앞서 있는 부분은 있지만, 아직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은 아니다”라며 “하드웨어를 넘어 실제 조리까지 구현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현기 비욘드허니컴 대표는 적용 환경을 기준으로 접근했다. 그는 “주방은 공간이 좁고 공정이 반복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람 형태의 로봇보다는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장비가 효율적”이라며 “당분간은 설비형 로봇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국 향후 수년간 실제 매장에 제품을 설치하고 데이터를 쌓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갈릴 가능성이 크다.

승부처는 K레시피 그리고 데이터

미국·중국 손 뻗기 전 '틈새 장악' 서둘러야…한국 요리봇 승부처는 'K레시피' [흑백요리봇]⑤ 원본보기 아이콘

전문가들은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까지 각 업체가 확보해야 할 경쟁력 중 하나로 ‘데이터’를 꼽았다. 하드웨어 성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이후 경쟁력은 학습 데이터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최 심사역은 “중국 로봇 기업들도 이미 데이터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현지에서 조리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쌓고 이를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현준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본부장 역시 "요리라는 특성을 반영한 물리 시뮬레이터와 좋은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 학습을 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본부장은 한국의 K레시피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전략도 소개했다. 그는 "한국이 푸드테크 로봇과 휴머노이드 분야를 선점하려면 요리 잘하는 분들의 암묵지 데이터와 레시피가 많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맛 자체가 기반이 돼야 수요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비욘드허니컴의 '그릴X' 대쉬보드에 조리 과정 및 결과 분석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황서율 기자

비욘드허니컴의 '그릴X' 대쉬보드에 조리 과정 및 결과 분석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황서율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전공 교수(월드푸드테크협의회 회장)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AI가 맞춤형으로 추천해주는 시대가 오면, 푸드테크는 지식재산권(IP)과도 연결될 것"이라며 특정 셰프나 연예인의 레시피를 요리봇과 묶어 브랜드화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표준 조리 매뉴얼에 그치지 않고 유명 셰프의 손맛, 연예인의 레시피, 숙련 조리사의 감각적 판단처럼 수치로 잡기 어려운 암묵지까지 데이터화하는 것이 K-요리봇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요리봇 시장, 공공이 함께 문 열어줘야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요리봇이 만든 석식 메뉴를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김대현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요리봇이 만든 석식 메뉴를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김대현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데이터를 빠르게 축적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는 공공 영역이 거론된다. 반복적인 대량 조리가 이루어지는 급식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소규모 자영업 식당과 달리 급식은 짧은 시간 안에 100명, 1000명분을 만들어야 한다"며 "인간이 하기엔 힘들고 위생과 품질 문제도 생길 수밖에 없어 요리봇 도입의 효용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개발 단계에서 공공이 수요처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교·요양원·군대를 예로 들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요리봇이 만든 음식을 먹어봐야 나중에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은 단순한 수요처를 넘어 기술 검증의 역할도 한다. 실제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유지보수 체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피지컬 AI 요리봇이 실생활에 도입되려면 현장 설치, 유지보수, 인증까지 높은 난이도의 허들이 존재한다"며 "정부 차원의 현장 실증 지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박수한 광운대 로봇학부 교수는 공간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요리봇이 투입됐을 때 어떻게 배치해야 효율적인지 디자인이 중요하다"며 "샐러드 재료 손질, 냉장 보관 같은 작업이 한 공간에서 최적의 동선으로 이뤄지도록 시설 전반을 재구성하는 것이 세계 시장 선점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공정 자동화가 결국 휴머노이드 시대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미국·중국 손 뻗기 전 '틈새 장악' 서둘러야…한국 요리봇 승부처는 'K레시피' [흑백요리봇]⑤ 원본보기 아이콘

규제보다 원가, 진짜 숙제는 내부에 있다

다만 요리봇 스타트업은 규제 개선과 정부의 지원보다도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자체적인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로봇의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는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외부에서 부품을 조달할 경우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제품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생산 기지 또한 베트남·필리핀 등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다. 핵심 부품과 생산을 외부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국내 기업이 가져가는 몫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미국·중국 손 뻗기 전 '틈새 장악' 서둘러야…한국 요리봇 승부처는 'K레시피' [흑백요리봇]⑤ 원본보기 아이콘

송정수 리피즈 대표는 "국내에선 요리봇 분야의 규제 문제는 크지 않다. 사실 기술과 생산의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품 단계에서 비용이 누적되면 최종 제품 가격이 크게 올라간다. 결국 원가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라며 "아직 국내 업체 대부분이 원천기술 없이 기존 부품을 조합해 애플리케이션을 얹는 구조"라고 전했다.

K-요리봇, 메뉴판은 준비됐다

경쟁자는 아직 없고 골든타임도 남아 있다. K-컬처라는 글로벌 메타트렌드에 힘입어 K-푸드테크와 K-요리봇이 일대의 기회를 맞이했다는 점을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 비빔밥·불고기·라면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지금, 정부는 그 음식을 만드는 로봇까지 함께 수출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 중이다.


유미선 농림축산식품부 푸드테크정책과장은 "K-푸드 수출을 많이 하는데, 로봇 기술도 K-푸드에 같이 넣어서 수출하는 것이 정부의 큰 그림 중 하나"라며 "수출 지원에 푸드테크를 정책적으로 편입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식품과 로봇을 묶는 'K-패키지' 전략이 정책 수준에서 구체화하고 있는 셈이다.

에니아이의 '알파그릴' 대쉬보드에 메뉴 선택 버튼이 나타나 있다. 김대현 기자

에니아이의 '알파그릴' 대쉬보드에 메뉴 선택 버튼이 나타나 있다. 김대현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요리봇 산업 생태계도 하나의 주방과 다르지 않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스타트업, 자본을 대는 VC,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학계, 시장을 지원할 정부 등 각 주체가 엇박자를 내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 요리봇 산업은 이제 막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다. 실제 수요가 형성되고, 제품이 현장에 도입되고 있으며, 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다. 결국 극한의 조리 현장에서 버티며 기술을 다듬은 ‘K-로봇 셰프’만이 주방에 남는다.

AD

<시리즈 끝>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