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미국이 한국의 디지털 장벽을 지적하며 간과한 것들
"작년 5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입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만 참여할 수 있다고 제한한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가 '2026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의 무역장벽 내용에 인공지능(AI) 인프라 조달과 보안 인증체계에 있어 미국 기업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불만을 제기한 데 대해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GPU 입찰 사업은 추가경정예산안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이 있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독자 AI 모델 및 인프라 확보가 절실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언급한 지난해 5월 GPU 입찰 사업은 한국 정부가 AI 분야 추경으로 1조원 넘는 돈을 들여 추진한 사업의 일부였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추경으로 첨단 GPU 1만장 확보, 국산 AI 반도체의 조기 상용화를 위한 실증 사업 확대 등을 진행했다. 추경 목적 자체가 국내 AI 생태계 활성화와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었다.
AI가 국가안보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고려하면, 이번 이슈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의 예외 사항으로 볼 수 있다. AI는 단순 기술을 넘어 사회, 경제, 산업, 군사 모두를 결합하는 총체적 주권의 문제기 때문이다. WTO 정부조달협정 제23조에 따르면 국가안보와 관련된 조달은 글로벌 국가 간 맺은 WTO 협정일지라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이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추진한 특수하고 일시적인 사업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해석했다. 더군다나 지난해 추경 외 본예산으로 진행한 'AI 연구용 컴퓨팅 지원 프로젝트'에는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 최초로 선정돼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가 올해 본예산으로 진행하는 GPU 구매·임차 사업 공모 대상에 국내외 기업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과거와 현재 모두 해외기업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고서가 지난해 12월을 기반으로 작성된 터라 새로 바뀐 상황도 반영하지 못했다. 위치 기반 데이터의 국외 이전 제한이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월 구글에 엄격한 보안 조건을 달아 고정밀 지도 반출을 허가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우리 정부가)그렇게 쉽게 내줄 줄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지만 이달 나온 보고서는 "2025년 12월31일 기준 승인된 사례가 없다"면서 1년 전 보고서에서 날짜만 바꾼 같은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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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오해 섞인 불만에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의 세계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와 이를 빌미로 통상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은 공공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박과 AI 주도권 확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미국이 가진 불만과 오해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역할을 발휘해 AI 주권과 공정한 통상 질서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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