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안 '백남준: Rewind/Repeat'展
미래의 선지자보다 물건의 사용법을 비튼 작가 다시보기
백남준은 왜 기계를 늘 제자리 밖으로 밀어냈나
우편함 안에서 방송이 흐른다. 불상은 자기 얼굴을 보고, 텔레비전은 몸에 달린다. 백남준의 진짜 발명은 새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잘못 쓰는 법이었다. 가고시안이 서울 용산구 APMA 캐비닛에서 선보이는 '백남준: Rewind / Repeat'는 그 어긋난 사용법으로 백남준을 다시 읽게 하는 전시다.
백남준을 둘러싼 말은 늘 너무 크고, 너무 정답에 가까웠다.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미래를 예견한 작가' '기술과 예술의 융합'.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런 말들은 작품보다 해설을 먼저 떠오르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그 순서를 바꾼다. 백남준을 첨단의 선지자로 다시 세우기보다, 물건의 직업을 끝까지 의심한 작가로 돌려놓는다. 전시는 크지 않다. 대신 짧은 동선 안에서 백남준의 핵심이 '기술'보다 '사용법'에 있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 'TV Bra for Living Sculpture'와 'Gold TV Buddha'가 있다. 하나는 몸 위에 화면을 올려놓고, 다른 하나는 고요한 불상 앞에 폐쇄회로 영상을 둔다. 흔한 해설은 여기서 동양과 서양, 영성과 미디어를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더 먼저 보이는 것은 그보다 생활에 가까운 쪽이다. 몸은 화면을 달고, 시선은 자기 영상으로 돌아온다. 수행보다 피드백, 관조보다 확인. 백남준이 앞서 본 것은 미래의 기계라기보다 화면 앞에서 인간이 취하게 될 버릇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Gold TV Buddha'는 대표작이기 전에 습관의 초상처럼 남는다.
우편함과 라디오도 같은 말을 한다. 'For London and Abroad (Mailbox)'에서 우편함은 더 이상 소식을 기다리는 상자가 아니다. 'Bakelite Robot'에서 라디오는 더 이상 소리의 기계가 아니다. 'Media Sandwich'에선 잡지와 레코드와 인쇄물이 설치의 재료가 된다. 보내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백남준은 이런 익숙한 분업을 자꾸 헝클어뜨린다. 그 어긋남이 그의 미학이었다.
기계는 제 할 일을 덜 하게 되는데, 물건의 표정은 오히려 더 많아진다. 두꺼운 브라운관, 나무 우편함, 빈티지 라디오, 금빛 불상. 백남준은 늘 그런 것들 옆에 있었다. 미래를 번쩍이는 새것으로 상상한 적 없는 사람, 이미 손을 탄 물건에 다른 사용법을 붙여 다시 살려낸 사람….
이번 전시가 좋은 것은 백남준을 크게 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간은 절제돼 있고, 작품 수는 많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 점잖음 덕분에 이름보다 물건이 먼저 보인다. 사실 백남준은 이름이 너무 커서, 정작 물건은 잘 안 보이기 쉬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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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그 순서를 바로잡는다. 'Rewind / Repeat'가 되감는 것은 과거가 아니다. 오늘의 버릇이다. 화면을 몸 가까이 두는 버릇, 자기 얼굴을 자꾸 확인하는 버릇, 기계를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손에서 놓지 못하는 버릇. 백남준은 미래를 예언한 작가가 아니라, 기계 앞에서 인간이 어떤 버릇을 갖게 되는지 먼저 본 작가였다. 그래서 그의 불상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다. 전시는 5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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