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부터 유세차량까지 비용 상승 '도미노'
보조금 없는 군소정당, 정치신인은 부담 가중

"우리처럼 몸집이 작은 정당은 현수막과 명함이 후보를 알리는 데 거의 유일한 수단인데 부담이 크죠… 비싸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준비 중인 군소 정당 관계자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홍보물 원자재 가격이 대폭 오를 수 있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원외 정당은 국고 보조금조차 받기 힘든 여건"이라며 "여태 치른 선거보다 이번 지방선거 비용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수막값 30% 뛴다…선거판 번진 '중동 전쟁'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서울 관악구 거리에 후보자들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시아경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서울 관악구 거리에 후보자들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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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의 여파가 국내 선거판의 비용 상승으로 번지고 있다. 석유 가격이 폭등하며 현수막과 명함 원료, 유세차량 기름값까지 영향을 준 탓이다.


3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원료값 상승 타격은 특히 현수막에서 두드러진다. '거리의 얼굴'로 여겨지는 현수막의 원단 가격은 30% 가까이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 폭등으로 합성섬유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함께 오르면서 현수막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업체 관계자는 "게첩비(내걸어 붙이는 비용)까지 장당 8만원 선인데 조만간 2만~3만원 오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는 선거구 내 읍·면·동에 현수막을 2장까지 게시할 수 있다. 예컨대 관악구 가선거구(보라매동·은천동·신림동) 구의원 후보가 동별로 2장씩 설치하면 48만원이 든다. 단가가 3만원씩 오르면 66만원까지 늘어난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돌입하기 전 유일한 홍보 수단인 명함도 골칫거리다. 종이뿐 아니라 잉크, 플라스틱 상자까지 원자재값이 줄줄이 오르면서다. 종이값과 직결되는 펄프 가격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환율과 함께 뛴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활엽수 표백화학펄프(SBHK) 가격은 t당 760달러로, 한 달 새 2.7% 올랐다. 영등포구의 한 명함 제작업체 점주는 "용지값도 올랐지만, 폴리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제품에 의존하는 플라스틱 상자는 벌써부터 입고가 원활하지 않다"며 "명함 가격이 5% 이상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역 단위 선거에서 쓰는 5t 유세차량을 선거운동 기간 13일간 대여하면 약 4000만원이 소요된다. 승용차 1대를 새로 사는 셈이다. 2일 기준 서울 지역 자동차용 경유는 ℓ당 1940원, 저속 주행하는 트럭 연비를 3㎞/ℓ로 가정하고 하루 100㎞씩 운행하면 13일간 기름값만 84만원이 넘는다.


현수막은 교체 횟수를 줄이거나 설치·철거를 직접 맡는 방식으로 비용을 일부 아낄 수 있지만, 유세차량의 연료비는 사실상 방법이 없다. 한 군소정당 관계자는 "기름값 부담이 크게 늘 것"이라며 "대여비라도 줄이려 협력 조합의 차량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선거비 상한선 그대로인데 정치신인 어쩌나

6·3 지방선거에 나온 기초의원 예비후보가 명함을 돌리는 모습. 이지예 기자.

6·3 지방선거에 나온 기초의원 예비후보가 명함을 돌리는 모습.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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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후보 1명의 평균 '선거비 한도'는 약 4800만원 수준이다. 광역의원은 5600만원, 기초단체장은 1억8400만원, 시·도지사는 평균 15억8700만원으로 제한된다. 물가 변동률을 일부 반영해 선거 때마다 제한액이 조정되지만, 기본적인 산식은 선거구 인구수 기준이다. 중동 리스크와 같은 시장 정세는 반영되지 않는다.


후보들은 제한액 내에서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 유세차량 대여, 공보물·현수막 인쇄, 광고 등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군소 정당이나 정치 신인들은 중동 전쟁의 여파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공직선거법상 유효투표수 10%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면 추후 비용도 보전받지 못한다. 국고 보조금 없이 선거비를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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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비 상한선은 사실상 그대로인 상황에서 비용만 오르는 구조가 정치 참여의 문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거운동 등이 후보자의 자금력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에 처음 출마한 서울 한 구의원 예비후보는 "현수막과 명함은 후보 이름과 얼굴, 공약을 알리는 가장 기본 수단"이라며 "비용을 줄였다가 홍보가 덜 될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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