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길 산책]벚꽃을 칭송한 시인 하우스먼 이야기
노년에 떠오른 절망적 첫사랑
흐드러지는 봄꽃의 운명처럼
벚꽃이 한창이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너무나 아쉽게도 빨리 져버린다는 점에서 벚꽃은 청춘을 닮았다. 인생을 사계절에 대응해 봐도, 벚꽃 피는 계절은 딱 청춘의 시기와 일치한다. 매년 벚꽃을 볼 때마다 나는 영국의 시인 '하우스먼(Alfred Edward Housman·1859~1936)'을 떠올린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나무가 벚나무라고 예찬한 그의 시 때문이다. 시는 다음과 같다.
가장 예쁜 나무 벚나무 / 가지마다 가득 꽃을 피우고
부활절을 맞아 흰옷으로 갈아입고 / 숲길에 서 있다.
보자, 칠십 년 인생 중에 / 스무 해는 지나 버렸고
칠십에서 스물을 빼니 / 봄은 오십 개만 남았네.
활짝 핀 것들을 보기에 / 오십 번의 봄은 아쉬우니
눈송이 매단 벚나무 보러 / 숲으로 가야지.
하우스먼이 실제 스무 살에 이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시가 담긴 시집은 하우스먼이 서른일곱 살에 출간되었으니까. 어쨌든 자기 수명을 70년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67년을 살았으니 수명은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한 셈이다. 나도 화자처럼 스무 살에 이 시를 처음 읽었다. 그런데 벌써 50개의 봄을 보내버린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나에겐 몇 개의 봄이 남아있을까? 예상하고 싶지 않다. 그저 어김없이 피어나 준 벚꽃에 감사하며 감상할 뿐. 하우스먼의 시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따로 있다. '내가 스물한 살 때(When I was One-and-Twenty)'라는 시다.
내가 스물한 살 때 어떤 현자가 말했지.
"돈은 얼마든지 내주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주지 마세요.
진주도 주고 루비도 주세요.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간직하세요."
그러나 나는 스물한 살이었고
그렇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었네.
내가 스물한 살 때 그가 또 이렇게 말했지.
"가슴에서 마음이 나올 때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숱한 한숨을 쉬어야 하고
끝없는 슬픔도 내주어야 합니다."
이제 나는 스물두 살
아, 그 말이 진리임을 알겠네.
시를 읽고 나면, 대체 21살과 22살의 차이가 뭘까 싶다. 그러나 시인의 생애를 알고 나면 의문은 해소된다. 동성애자였던 하우스먼에겐 대학 시절에 짝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하우스먼의 사랑을 거절하고 여자와 결혼한 후 캐나다로 건너갔고 하우스먼은 독신으로 살았다. 딱 한 권의 시집만 발표하고 교수로서 연구와 강의에 전념했던 하우스먼은 첫사랑이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서둘러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을 출간했다.
당시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던 시대였다. 스물한 살에 같은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수십 년 동안 참고 살아야 했던 심정은 어땠을까? 스물한 살에 짝사랑했던 남자가 죽기 전에 읽어주길 바라며 절필을 깨고 시집을 낸 할아버지라니. 이런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짐작도 가지 않는다. 다만, 그의 시 '내가 스물한 살 때'가 21살에 사랑에 빠졌다가 22살에 실연을 겪은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는 짐작은 해 볼 수 있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 혼자 봐도 좋지만, 같이 보면 더 좋은 벚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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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SBS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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