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중식·햄버거까지…로봇이 음식 조리
균일한 맛과 인력난 해소, 매출 확대 효과도
글로벌 7조 시장…벤처캐피털 투자 잇달아

편집자주전국 80만 개에 달하는 외식업체 가운데 상당수는 사장과 가족, 몇 명의 아르바이트 인력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이 구조가 더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건비는 오르는데 사람은 부족하고, 가까스로 인력을 채용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사람에 의존하던 주방이 '기계 중심 구조'로 전환될 수 있을까. 아시아경제는 5편에 걸쳐 요리봇과 관련한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의 현실과 미래를 점검해본다.
"불이 감지돼 잠시 그릴을 올렸습니다."

지난달 18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고깃집. 삼겹살을 굽던 셰프가 상황 설명과 함께 그릴을 위아래로 흔들며 능수능란하게 불길을 잡았다.


삼겹살 4인분이 초벌 상태로 익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남짓. 360도로 그릴을 회전하며 고기를 구운 셰프는 사람이 아닌 비욘드허니컴의 인공지능(AI) 요리봇 '그릴X'였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고깃집에서 비욘드허니컴의 '그릴X'가 그릴에 삼겹살을 올린 뒤 눈을 감은 표정을 짓고 있다. 황서율 기자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고깃집에서 비욘드허니컴의 '그릴X'가 그릴에 삼겹살을 올린 뒤 눈을 감은 표정을 짓고 있다. 황서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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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허니컴 관계자는 "그릴X는 고기의 마이야르 반응, 육즙, 탄 정도 등을 수치화해 조리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췄다"며 "액추에이터와 분광센서 등 핵심 부품을 자체 개발해 도입 비용 부담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 앞에 서는 사람이 줄어드는 대신, 주방에 '표준화된 노동'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굽고 볶고 비비는 로봇들…"주방이 바뀌고 있다"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불 앞에 서는 사람이 줄어드는 대신, 주방에 '표준화된 노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핵심은 단순 자동화가 아니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에서 '맛을 표준화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비전과 센서, 레시피 자동화 알고리즘을 결합한 요리봇이 비비고, 넣고, 굽고, 볶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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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성장도 가파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TBRC는 글로벌 요리봇(Cooking Robot) 시장이 지난해 42억5000만달러(약 6조원)에서 올해 48억달러(약 7조원), 2030년 78억6000만달러(약 12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른 요리봇 시장의 연평균성장률(CAGR)도 13.1%에 달할 것이란 추정이다.


그릴X를 도입한 고깃집 사장 박희언씨(36)는 "요리봇 사용으로 인건비를 40~50% 줄였다"며 "고기집은 노동 강도가 높아 구인이 어렵고, 아르바이트생도 금방 그만둔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는 최소 5~6명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2~3명으로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월 인건비 기준 수백만원이 절감되는 셈이다. 장비 가격이 수천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수개월 내 투자비 회수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된 웍질도 대신해…"숙련 영역일수록 수요 커진다"

서울 성동구 에니아이 연구실에서 '알파그릴'이 쇠고기 패티를 구워내 스스로 쟁반에 올려놓고 있다. 김대현 기자

서울 성동구 에니아이 연구실에서 '알파그릴'이 쇠고기 패티를 구워내 스스로 쟁반에 올려놓고 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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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 성동구 에니아이 연구실. 그릴 위에 쇠고기 패티를 올리고 버튼을 누르자 상·하판 그릴이 가까워지며 양면을 동시에 익히기 시작했다. 60초 뒤 상판이 올라가자 갈색으로 익은 패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테인리스 쟁반에 자동으로 쌓인 패티를 잘라 입에 넣자, 부드러운 식감 사이로 육즙이 강하게 퍼졌다.

에니아이의 알파그릴은 시간당 200~300개의 패티를 동일한 품질로 생산한다. 양면 동시 조리 구조로 뒤집기 단계를 제거했고, 온도 센서로 열 손실도 최소화했다.


이용권 에니아이 사업총괄(CBO)은 "전국 외식사업체가 80만 개에 달하는데, 이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려면 인력과 품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식당 '아름드리' 조리실에서 만다린로보틱스의 '로보틱웍'이 웍질(웍을 들어 흔드는 동작)로 짜장소스 재료를 볶고 있다. 김대현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식당 '아름드리' 조리실에서 만다린로보틱스의 '로보틱웍'이 웍질(웍을 들어 흔드는 동작)로 짜장소스 재료를 볶고 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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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의 음식이 만들어지는 급식 주방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1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식당 '아름드리'. 이날 메뉴인 짜장밥을 먹기 위해 학생 수십 명이 줄을 섰다. 조리실 한켠에서 직원이 양배추와 양파를 투입하자 만다린로보틱스의 '로보틱웍'이 웍질(웍을 들어 흔드는 동작)로 재료를 볶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대용량 캔에 담긴 짜장소스를 데워 제공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간짜장처럼 소스가 볶아 나온다. 로보틱웍은 이 식당에서 짜장뿐 아니라 제육볶음, 비빔밥 등 다양한 메뉴에 활용된다.


김민규 만다린로보틱스 대표는 "중식은 노동 강도가 높고 요리사의 숙련도가 중요한 분야"라며 "로봇이 그 부담을 줄여준다"고 말했다.


수치로도 효과는 확인된다. 서울 강남구가 진행한 급식 조리 로봇 실증 결과, 450명 규모 튀김 작업 기준으로 유해인자 노출은 28.6% 감소했고 근골격계 부담은 2단계에서 0단계로 낮아졌다. 조리 업무 강도 역시 평균 31.1% 줄었다. 사람은 숙련이 필요하지만, 로봇은 한번 학습하면 동일한 결과를 반복한다. 숙련도가 높을수록 자동화 수요가 커지는 이유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식당 '아름드리' 학생들이 만다린로보틱스의 '로보틱웍'가 웍질(웍을 들어 흔드는 동작)로 만드는 짜장소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대현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식당 '아름드리' 학생들이 만다린로보틱스의 '로보틱웍'가 웍질(웍을 들어 흔드는 동작)로 만드는 짜장소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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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진화하지만 고객은 한정적

조리로봇 산업은 여러 방식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식품 제조 공장 및 생산 설비 소형화 ▲다용도 협동 로봇팔형 ▲특정 조리 전용 장비형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과 투자자금이 뛰어들면서 시장은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TBRC는 향후 트렌드로 ▲완전 자동 조리 공정 ▲AI 기반 레시피 최적화 ▲클라우드 키친 확대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또 다른 현실도 드러난다. 아직까지 조리 로봇을 과감히 투입할 수 있는 곳은 매출 상위 매장이나 대규모 프랜차이즈 업체가 대부분이다. 수천만원대 장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업자만이 이 변화를 먼저 가져갈 수 있다. 이용권 에니아이 CBO사업총괄은 "현재 주요 고객은 매출 상위 20% 수준의 매장"이라며 "나머지 80%를 위한 저가형 장비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나는 비빔로봇입니다"…사람이 못버틴 주방 차지한 로봇들[흑백요리봇]① 원본보기 아이콘

하이볼·음료 제조 로봇을 만드는 리피즈의 송정수 대표는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6에서 F&B(식·음료) 로봇 수요가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스타벅스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들도 자동화 설비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제품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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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변화는 분명하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경험이 아닌 데이터가 맛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외식업 자체의 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시장, 실패 사례도 적지 않은 영역에 여러 벤처캐피털(VC)은 변화의 확신을 갖고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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