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 이야기

이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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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신데렐라'를 좋아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재투성이 아이라고 부를 정도로 천대를 받아왔지만. 어쩌다 무도회에 나갔다가 왕자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되어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이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가장 신데렐라에 가까운 사람을 장희빈으로 고를 수도 있겠지만, 장희빈은 끝내 몰락해서 사약을 받아 죽게 됐으니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데렐라에서 가장 어울리는 것은 역시 신빈 김씨가 아닐까.

원래 신빈 김씨는 노비의 신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원경왕후 민씨가 김씨를 궁녀로 들여와 며느리인 소헌왕후에게 보냈다. 김씨는 소헌왕후의 지밀나인이 됐으니, 이는 곧 왕비의 비서였다. 왕비는 원래 내명부의 수장이기에 정말 할 일이 많았다. 궁궐의 수많은 인원들을 부리며 살림을 해야 했고, 수많은 왕족, 친척들과 소통하고 아이도 낳고 키워야 했다. 게다가 사직이나 은퇴라도 할 수 있는 외명부와 달리 내명부는 죽지 않는 한 계속 일해야 했으니, 두 사람은 신분을 넘어선 직장동료였다.


신빈 김씨는 세종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됐고, 8명의 아이를 낳았다. 소헌왕후도 사람인데 어떻게 다른 여인과 남편을 공유하는데 마음이 편안했겠는가. 그러나 소헌왕후와 신빈 김씨는 질투로 엮이기보다는 오히려 동지의식, 아니 우정이 더 강력했던 것 같다. 소헌왕후는 자신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양육을 신빈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조선 역사상 이렇게 사이좋은 왕비와 후궁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신빈 김씨에게도 슬픔이 찾아왔다. 신빈 김씨의 딸 둘은 모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옹주의 이름을 받기도 전에. 그리고 소헌왕후, 세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더욱이 신빈 김씨의 막내아들인 담양군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 죽었다. 신빈 김씨는 살아서 사랑하는 막내아들의 죽음을 맞이하고 깊이 슬퍼하며 명복을 비는 불경을 만들려고 했다. 문종은 불교를 위해 국고를 쓴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신빈 김씨를 도왔다.


하지만 신빈 김씨는 끝내 머리를 자르고 비구니가 돼 출가했다. 이후 왕(단종)이 속세로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 그렇게 신빈 김씨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며 조용히 살고 싶었겠지만, 속세를 떠나지 못한 그녀의 아들들은 이후에 벌어지는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신빈의 첫째아들인 계양군, 둘째 의창군, 넷째 익현군은 줄줄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술을 지나치게 마셔 병이 난 탓이었다고 한다.


이복형 세조는 이들이 술을 마시게 된 게 맏이인 계양군 탓이었다고 했지만 과연 그것 때문이었을까. 신빈 김씨의 아들들에게 이복이지만 형제였던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은 줄줄이 귀양가거나 죽어나가게 됐다. 바로 계유정난, 그리고 단종복위운동 때문이다. 신빈 김씨의 자식들은 세조의 편에 서서 살아남고 권세를 누리게 됐지만, 마음의 상처만은 어쩔 수 없어 술을 마시게 된 게 아닐까. 신빈 김씨는 그렇게 네 아들을 앞서 보내고 1464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성실하게 살았고 그것으로 인정받았으며, 왕의 사랑을 받고 충분히 행복을 누렸건만, 시대의 풍랑이 결코 가만히 살 수 없게 했다. 신데렐라처럼 시작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동화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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