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상 손실' 내세운 사측 주장에 제동
투자자 청구액 1000억 인용
비상장사 CB·RCPS 투자 분쟁 '이정표'

'로스트아크 잭팟' 스마일게이트, 1000억대 CB 소송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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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게임 '로스트아크'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RPG가 과거 발행한 전환사채(CB)를 둘러싸고 투자사와 벌인 1000억원대 법정 공방에서 법원이 투자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제31민사부(부장판사 남인수)는 2일 라이노스자산운용이 스마일게이트홀딩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매매대금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000억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23년 11월 라이노스 측이 소를 제기한 지 2년 5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이번 분쟁은 2017년과 2018년 스마일게이트RPG가 발행한 260억원 규모의 CB에서 시작됐다. 당시 라이노스자산운용은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해당 채권에 투자했다. CB는 기업가치가 오르면 주식으로 바꿔 추가 수익을 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옵션부 채권이다.


이후 '로스트아크'가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며 기업 가치는 수직 상승했다. 발행 당시 약 2000억원이었던 기업 가치는 수조원대로 급등하며 라이노스 측이 보유한 CB의 주식 전환 가치도 5300억원대에 달하게 됐다. 투자 원금 대비 20배가 넘는 규모다.

갈등은 2023년 11월 1차 CB 만기가 도래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마일게이트 측이 "계약서상 상장 추진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연 3.5%의 이자율을 적용한 원리금 상환을 통보하면서다. 이에 라이노스 측은 사측이 의도적으로 상장 의무를 위반해 주식 전환 기회를 박탈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스마일게이트RPG가 2022년 기록한 142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상장 불가능 사유'로 볼 수 있는지였다. 사측은 '당기순이익 120억원 이상일 때 상장을 추진한다'는 계약 조건을 근거로 상장 추진 의무가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당기순손실은 기업이 일정 기간 벌어들인 총수익보다 지불한 비용이 커 장부상 적자가 발생한 상태를 뜻한다.


반면 투자사 측은 해당 손실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에 따라 CB 가치를 부채로 평가하면서 발생한 '장부상 수치(파생상품 평가손실)'일 뿐이라고 맞섰다. 실제 2022년 영업이익이 3600억원을 넘어서는 등 역대급 실적을 낸 만큼, 상장 추진 의무를 이행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스마일게이트 측이 '회계상 손실'을 근거로 상장 추진 의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K-IFRS상 전환권을 부채로 분류할 수는 있으나, 이 사건 계약에 비춰볼 때 사측은 이를 자본으로 분류해 상장 절차를 이행할 계약상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사측의 주장대로라면 실적이 좋아져 순이익이 높아질수록 상장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데, 이때 전환권(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을 부채로 평가해 손실을 인식하면 다시 이익이 줄어 상장 의무가 사라지는 '순환 논리'에 빠지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계약에 따른 상장 추진 의무는 사실상 형해화(내용 없이 뼈대만 남음)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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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비상장사 투자 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CB나 상환전환우선주(RCPS) 관련 분쟁의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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