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깊이 빠져들면 어느 순간 '고통의 독방'에 들어선다. 승부에 과도하게 몰입한 결과다.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치면 인간성의 경계를 시험받는 순간이 찾아온다. 평온한 표정 뒤에 숨겨져 있던 섬뜩한 본능이 고개를 든다.
타인의 공간을 빼앗으려는 욕망이 이성의 선을 넘으면 어둠의 자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또 다른 얼굴. 상대를 극한으로 몰아넣고, 살기 어린 공격을 퍼붓는 냉혹한 승부사로 변모한다. 괴로워하는 상대를 보며 자비를 베풀 법도 하지만 1% 생존 가능성마저 차단하려는 의지는 초강수로 이어진다. 상대는 안간힘을 쓰지만 끝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미묘한 쾌감이 스친다면, 이미 고통의 독방 문턱에 들어선 셈이다.
생과 사를 쥐락펴락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 위험해진다. 볕이 들지 않는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선택. 습기를 머금은 벽에 스며든 꾸덕꾸덕한 응어리. 그것을 털어내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상대가 뿜어낸 절망의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불쾌한 기억이 축적되는 사이, 그 응어리는 어느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승리의 쾌감은커녕 후회의 그림자만 머릿속에 맴돈다. 승자가 됐다고 해서 봄볕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바둑의 승부조차 욕망이 인간성을 위협한다. 하물며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은 어떠할까. 우리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을 게임의 한 장면으로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 충격과 공포는 익숙함의 뒤에 숨어 발톱을 감춘다. 과도한 자극이 반복되면서 전쟁의 참상에도 점차 무덤덤해진다. 그러는 사이 절망의 그늘은 공간과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중동에서 벌어진 인간성 상실의 장면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선택은 또 다른 응어리를 낳는다. 눈물과 슬픔, 절망의 메아리는 결국 하나의 결정에서 시작된다. 버튼 하나를 누르는 손가락의 작은 압력. 그 미세한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 슬픔의 무게를 세상에 더하고 있는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육중한 미사일에 실린 '탐욕의 폭풍우'가 이란의 초등학교를 덮친 뒤 재잘거리며 웃던 아이들은 잿더미 속에 묻혔다. 작은 손에 쥐어진 연필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들은 작별의 벼랑으로 밀려났다. 순박한 미소가 사라진 자리에는 피눈물의 응어리만 맴돈다. '오폭'이라는 무미건조한 단어 하나로 악행의 업보가 지워질 수는 없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일상이 된 야만의 시대다. 어떤 이는 죄를 짓고, 또 다른 이는 그 참상을 애써 외면한다. 정치와 이념, 종교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지만 남는 것은 참담한 절규뿐이다. 상처는 대물림되고, 털어낼 수 없는 응어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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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비롯된 '중동의 흙먼지'도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아픔의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 몸서리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절망의 응어리가 사라지고, 평화에 대한 믿음이 다시 번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고통의 독방은 이미 이 시대의 가슴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다. 멈추지 않는 슬픔의 여운이 우리의 봄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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