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시대부터 시작된 꽃구경 문화
회사 연례행사로 자리잡아…간사 선임도 불사
자리잡기 등 과열 양상에 비판도

도쿄는 이번 주 종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운 좋게 비 오기 전 잠깐 동료들과 벚꽃 명소인 신주쿠 요요기 공원을 찾았는데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일본은 벚꽃 철만 되면 카페부터 식당까지 '벚꽃 메뉴'가 나오는데요. 이번 주는 일본이 유독 진심인 벚꽃 구경, '오하나미(お花見)' 문화에 대해 들려드립니다.

지난달 30일 도쿄 신주쿠 요요기 공원에 꽃구경하러 몰린 사람들. 전진영 기자.

지난달 30일 도쿄 신주쿠 요요기 공원에 꽃구경하러 몰린 사람들. 전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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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꽃놀이…귀족들이 즐기던 문화

벚꽃놀이의 시작은 일본의 8~12세기를 일컫는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요. 당시 귀족들은 만개한 벚꽃을 감상하며 시도 한 수 읊고, 술도 마시며 연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농민들도 벚꽃 봉오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파종 준비를 시작했다고 해요. 만개한 벚꽃에는 풍작의 신이 깃든다고 여겨 제물을 바치며 풍작을 기원했습니다. 벚꽃이 피는 시기 자체를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죠.


만화 '짱구'에 등장하는 벚나무 아래 피크닉은 17세기 에도시대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벚나무를 많이 심기 시작한 것도 있고, 벚꽃 명소들도 많이 생겨 꽃놀이를 즐기는 문화가 모든 계층에 자리 잡게 됐다고 합니다.

1995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크레용 신짱' 중 '벚꽃놀이를 가자'에 등장하는 장면. TV아사히.

1995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크레용 신짱' 중 '벚꽃놀이를 가자'에 등장하는 장면. TV아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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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회사 벚꽃놀이 필참…벚꽃 간사도 있어요

일본 회사에서는 이 시기 회사 야유회로 벚꽃놀이를 합니다. 일시, 참가비 등을 공지하는 안내 메일도 옵니다. 4월부터 입학, 입사가 시작되는 일본에서는 신입사원도 이 시기 벚꽃놀이에 참여해 인사도 드려야 하고요. 사실상 연초 행사기에 이 행사를 도맡을 간사도 선임합니다.


간사는 일기예보를 참고해 야유회 날짜, 장소, 참가비 등을 정하고 레크리에이션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오락부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실제로 제 옆 돗자리에 앉은 분들이 야유회 오신 분들이었는데 다 같이 손수건 돌리기를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간사의 가장 막중한 임무는 자리 잡기입니다. 일본은 이 시기 정말로 벚꽃 구경에 진심입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벚꽃 명소인 공원들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는데요. 그래서 자리 잡기를 하려면 남들보다 일찍 나서야 합니다.

벚꽃 간사가 미리 자리를 잡기 위해 깔아둔 돗자리. 전진영 기자.

벚꽃 간사가 미리 자리를 잡기 위해 깔아둔 돗자리. 전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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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대신 아침 일찍 가서 자리를 맡기도 하고, 명소는 정말 밤을 새워서 자리 잡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밤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는 공원이나, 밤새면서 자리 잡지 말아 달라고 공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요요기 공원에도 정장 차림으로 와서 돗자리를 펼쳐놓고 노트북으로 업무 보는 간사들이 보이더라고요.


이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간사 덕분에 벚꽃 구경 잘했다는 말과 함께, 간사들의 한풀이 메시지도 많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아 드디어 끝났다 아침부터 집 가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메시지부터 "나는 자리 맡느라 벚꽃 다 봤으니 이제 집 가고 싶어"이런 메시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벚꽃전쟁으로 대행 서비스까지 생겨나

벚꽃놀이 문화가 과열되면서, 대행 서비스도 생겼습니다. 용역회사를 중심으로 고객 대신 벚꽃 명소 자리 선점을 해준다고 합니다. 시간당 2000~4000엔(1만8000원~3만8000원)에 밤샘 자리 잡기면 심야 할증과 교통비도 따로 붙는다고 하네요. 돗자리부터 의자, 조명까지 빌려주는 업체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까지 해서 벚꽃놀이를 즐겨야 하느냐'는 의견도 많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사 벚꽃놀이는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일본 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TSR)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시기 벚꽃놀이를 개최한 기업은 23.8%로 전년의 29.1%보다 줄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해요.

벚꽃 이미지. 픽사베이.

벚꽃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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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사에서는 여전히 이를 인사 나누는 자리, 소통할 수 있는 자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요즘은 실내 꽃놀이도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케이터링 업체를 불러 회사 회의실을 봄 분위기로 꾸미고 이벤트를 여는 것인데요. 오히려 최근에는 이런 실내 꽃놀이가 더 수평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회사로 보이게 해준다며 주목받고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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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벚꽃에 진심인 나라입니다만, 올해 벚꽃은 한 주 내내 세차게 몰아친 비바람에 흩어져버렸습니다. 참 덧없습니다. 일본에서도 이 때문에 벚꽃을 꿈처럼 덧없는 풀이라는 뜻의 '유메미구사(夢見草)', 혹은 허망하게 사라져버린다는 뜻의 '아다자쿠라(徒?)'로 표현하곤 합니다. 한 차례 벚꽃전쟁이 지나가니 또 마음 한 켠에 아쉬움도 남는 것 같고요. 매년 잠깐 찾아오는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도쿄(일본)=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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