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상대 첫 소송… 대법원 앞 멈춰
2심 뒤집히고 상고장 제출 뒤 취하
기아호적 후속조치는 찾을 수 없어
파양 등 입양 후 관리체계도 '전무'

편집자주해외입양의 역사는 70여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직후 고아를 줄이기 위해 시작된 해외입양은 복지 예산을 아끼고 외화까지 벌어다 준다는 인식 아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로 입양된 이들의 삶과 권리는 방치됐다. 해외입양과 관련한 수십 년의 기록에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그 구조적 무관심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해외입양인 200여명이 국가에 전하는 목소리를 통해서는 해외입양의 문제점과 과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시아경제가 해외입양의 실상을 깊이 있게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잊힌 아이들]⑧"국가는 책임 없다"… 묻지 못한 불법 해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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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과거 불법 해외입양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2023년 해외입양인이 대한민국 입양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지만 패소했다.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은 확인됐다. 국가 개입에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그 책임까지 묻는 것이 해외입양 단절의 첫걸음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1979년 미국에 입양됐던 애덤 크랩서씨(한국명 신송혁)는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홀트)와 국가를 상대로 한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재판은 해외입양된 입양인이 대한민국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한 첫 소송으로 관심을 받았지만 1심 배상판결, 2심 원고패소를 끝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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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1억원 배상판결 후 2심서 뒤집혀… 확인하지 못한 정부·입양기관 책임


47년 전 미국으로 입양된 후 파양과 입양을 반복하며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신씨는 2019년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시작했다. 홀트가 입양을 추진하면서 친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아로 호적을 꾸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신씨에 따르면 홀트는 고아 호적을 만들면 '친부모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입양이 가능해지는 사각지대를 악용했다. 이 소송의 쟁점도 '고아호적(기아호적) 조작'과 '후견인으로서의 보호의무·국적취득 확인 의무' 위반 여부였다. 2023년 1심은 신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홀트가 신씨의 후견인으로서 다해야 할 보호의무와 국적 취득 확인의무를 저버렸으며, 이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홀트는 국외입양을 간 신씨의 후견인으로서 입양이 완료될 때까지 수년간 불완전한 지위에 있는 신씨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홀트가 의무를 다해 양부모에게 시민권 취득 절차를 제때 이행하도록 주지시키고, 입양 완료 후 신씨가 국적을 취득했는지 적극적으로 확인했다면 신씨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강제추방되는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홀트가 기아호적을 꾸며 입양을 진행했다는 신씨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무적자 취적에 앞서 친부모를 찾기 위한 기관 측 의무도 2005년에 들어서야 명시화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기에 당시 아동카드 기록 등 정황을 감안하면 신씨를 보육원에 맡긴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려 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봤다.


신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했다. 해외입양 과정에서 국가가 국적 취득 여부 확인 등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국가도 아동 권익과 복지를 증진하는 일반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도 이를 책임 의무 위반의 근거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입양기관에도 면죄부를 줬다. 2년 뒤 진행한 2심에서 홀트의 1억원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은 취소됐고 정부와 홀트를 상대로 한 청구는 모두 기각됐다. 정부와 입양기관의 책임 모두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신씨는 2심 판결 직후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보름 뒤 소송대리인을 통해 상고취하서를 제출했다. 이후 홀트와 정부 측에 확정증명서가 각각 전달되며 소송은 끝났다. 소송 과정에 참여했던 A씨는 "길고 복잡한 소송 과정에 따른 어려움, 본인이 태어난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라는 심리적 부담 등 다양한 요인이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책임 인정과 입양인에 대한 사후 관리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보내진 해외입양인의 남은 삶을 보호하는 시스템 구축이 해외입양 단절의 출발점이라는 얘기다.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 소장은 "해외입양 피해 사실 규명에 있어서 지나치게 증거 중심의 입증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개인이 증명해야 할 사적 피해가 아니라, 국가의 관리 부실과 정책 실패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집단적인 사건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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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서 사라진 아이들… 기아호적, 파양 관리는 전무(全無)


친부모를 알 수 없는 아동에게 정부가 임의로 호적을 부여해 시설 보호나 입양에 사용한 '기아호적'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법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약 18년간 대법원이 발급한 기아호적은 3만8361건이다. 기아호적은 1948년 호적법 제정 이후 2007년까지 시행되다가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면서 폐지됐다. 1999년에만 4025건이 발급됐는데, 17개 시도 중 서울시에서만 총 2만7456건이 사용됐다.


문제는 기아호적 발급 과정에서 정보가 임의로 작성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법원이 본적이 되거나 입양기관이 본적과 주소지가 되는 사례도 있었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입양인의 가족찾기를 위해 정보공개청구 열람을 안내하고 있지만 잘못 기록되거나 임의로 작성된 기아호적을 가지고 자란 아동이 성인이 됐을 때는 가족을 찾을 방법이 없다.


정상적인 기록이 남아 있더라도 친부모의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 국내외 입양인의 정보공개 청구 건수는 ▲2021년 1327건 ▲2022년 2043건 ▲2023년 2717건 ▲2024년 3374건 등 총 9461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친부모 정보공개 동의는 1460건으로 동의율은 15.4%에 머물고 있다.


2024년의 경우 3347건 가운데 친부모의 동의로 친부모 인적사항 등의 입양정보를 확인한 사례는 460건에 그쳤다. 반면 친부모가 존재하더라도 입양정보 제공 동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거나 거부한 사례가 848건으로 2배에 육박했다.


해외에서는 입양인의 알 권리가 보장돼 있다. 영국, 호주와 일부 미국 주 등에서는 성인이 된 입양인이 친생부모의 동의 없이 출생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성인과 아동의 권리가 충돌할 때 아동의 권리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영국은 1975년 아동법을 통해 성인 입양인의 출생정보 접근권을 인정했다.


신씨와 같은 '파양'에 대한 관리 부족도 마찬가지다. 해외입양 후 파양은 해당 국가에서의 법적 친자 관계가 소멸돼 입양아동의 시민권 미취득이나 강제추방 등 심각한 인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입양연대에 따르면 해외입양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미국의 경우 한때 한국 입양아의 파양률이 15%에 달했다. 실제 신씨는 양부모가 아동 학대 혐의로 체포되면서 집에서 쫓겨난 뒤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못해 불법체류자가 된 경우다. 그는 36살이던 2012년에야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2016년 한국으로 강제추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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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파양에 대한 정부와 입양기관의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파양의 성립 요건과 절차는 원칙적으로 입양 당시 양부모의 본국법을 따르고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해당 국가에서 파양이 됐다고 본국에 통보하지는 않는 시스템으로, 공식적인 통계나 공시 사항도 없다"며 "(파양에 대한) 팩트 체크 과정에서의 어려운 부분도 현실적으로 있다"고 털어놨다.



입양아들이 미국에 도착해 전세기에서 내리는 모습. 국가기록원

입양아들이 미국에 도착해 전세기에서 내리는 모습.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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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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