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사태 반복않겠다는 美
中 부품 우회수입까지 봉쇄
한국 기업들 반사이익 기대

[아경의 창]현실로 다가온 로봇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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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워싱턴 D.C. 정부 주요 기관의 사무실. 구석에서 충전 중이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슬그머니 눈을 뜬다. 발소리 하나 없이 일어선 로봇은 한 책상 앞에 멈춰 서더니 몸체에서 뻗어 나온 연결 단자를 컴퓨터에 꽂는다. 수천 개의 정부 기밀 파일이 눈 깜짝할 새 어딘가로 빠져나간다. 임무를 마친 로봇은 다시 충전 케이블을 꽂고 눈을 감는다.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한 직원들 곁에서 커피를 나를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 속 한 장면 같지만 미국 의회는 이를 결코 허황된 상상으로만 보지 않는 것 같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미국 안보 로보틱스 법안(American Security Robotics Act)'을 공동 발의했다. 최근 미 의회에서 양당이 무언가를 함께 추진하는 일은 보기 드문데도 이렇게 뜻을 모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본다는 의미다. 하원에서도 2022년 중국산 드론 규제 법안을 발의했던 엘리스 스테파닉 공화당 의원이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내년 이 법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법안의 골자는 미국 연방정부 소속 기관이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북한·이란 등 적대국이 만든 휴머노이드를 사지도 쓰지도 말라는 것이다. 완성품뿐 아니라 핵심 부품 조달까지 막는다. 정부 자금을 받는 대학과 연구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슈머 의원은 중국 기업들이 로봇 분야에서 늘 써온 전략, 즉 값싼 물건을 대량으로 쏟아붓고 그 안에 숨긴 눈과 귀로 정보를 빼가는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이렇게 긴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 설치된 휴머노이드 로봇 약 1만6000대 가운데 중국산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산은 가격 경쟁력도 압도적이다. 미국 어질리티 로보틱스사의 휴머노이드가 약 3억7000만원인 데 반해 중국 유니트리 제품은 2300만원에 불과하다. 미국 정부는 중국제 DJI 드론을 섣불리 도입했다 크게 한번 덴 적이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경찰과 군까지 쓰다가 보안 문제가 터진 후에야 뒤늦게 퇴출 작업에 나섰던 것이다. 이번 법안은 로봇에서만큼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선제적 방어다.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에는 솔깃한 이야기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안보 로보틱스 법안으로 현대차 자회사 보스턴다이나믹스 같은 한국 기업들에 반사이익의 기회가 열렸다고 평가한다. 예전에 중국산 태양광·배터리·전기차 등이 미국에서 규제 철퇴를 맞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던 것과 비슷한 패턴이다. 다만 문이 열렸다는 것과 들어가는 건 다른 이야기다. 가격 경쟁력 확보는 물론이고 제3국에 부품을 수출하는 등의 중국 측 우회 전략에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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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 법안 발의는 휴머노이드를 스마트폰이나 라우터(공유기)와 같은 새로운 '정보 유출의 통로'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백도어 코드 한 줄, 카메라 렌즈 하나가 언제든 치명적인 스파이로 돌변할 수 있는 시대다. 사람을 닮은 로봇이 사무실을 누비고 국가 주요 시설을 순찰하며 민감한 데이터 곁에 24시간 머무는 일상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 로봇을 '누가 만들었는가'와 '그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화두가 됐다. 로봇 안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의제가 아닌 지금 우리 곁의 현실이다.


박충훈 콘텐츠편집2팀장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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