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빈자리 채워야"…'마케팅 논리' 반론도
한글 열풍·BTS 공연장…현판 논쟁 새 전선

지난달 1일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 주최로 열린 '3.1절 맞이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설치 범국민 출범식'에서 예시현판 모형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일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 주최로 열린 '3.1절 맞이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설치 범국민 출범식'에서 예시현판 모형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은 278만3998명이다. 전체 관람객 688만6650명에서 40%에 달한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지난달 31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 이 숫자를 광화문 한글 현판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핵심 전제는 '관광객은 이야기를 소비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없는 유적은 소비되지 않는다. 현재의 한자 현판은 조선 시대의 물리적 복원이라는 의미는 지니지만,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글의 탄생지라는 서사까지는 담아내지 못한다.

경복궁은 1443년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과 훈민정음을 만든 역사의 현장이다. 그 정문에 훈민정음 해례본체 한글 현판을 거는 것은 이곳이 한글의 모태임을 선포하는 행위가 된다. 김 원장은 "현재 광화문에는 한글에 관한 한 마디의 설명도 없다"며 "서사의 완결을 위한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류와의 접속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공연을 예로 들며 광화문이 이미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살아있는 한국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고 봤다. 세종학당이 87개국 252개소에서 운영되고 전 세계 MZ세대가 한국어를 배우러 몰려드는 흐름 속에서, 한글 현판이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한자 현판이 전통의 존중이라면 그 아래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은 혁신의 계승이 된다는,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논리"라고 설명했다.

광화문현판 색상 분석 교체.

광화문현판 색상 분석 교체.

원본보기 아이콘

현장에서의 실용성도 짚었다. 한자에 낯선 국내 젊은 세대와 한글을 배워 광화문을 찾은 외국인 모두에게 한글 현판은 그 자체로 문화적 안내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는 "대형 전광판과 고층 빌딩 사이에서 훈민정음체 현판은 독보적인 촬영 배경이 된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확산 효과까지 더하면 서울의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 저비용 고효율의 문화 전략이 된다"고 주장했다.


해법으로는 전면 교체 대신 추가 설치를 제안했다. 소모적인 찬반 논쟁을 실용적으로 매듭짓는 절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관광 효과를 전면에 내세운 논거에는 반론이 따른다. 마케팅 논리로 문화유산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물음이다.

AD

나아가 이날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지적한 대로,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이후 박정희 정권의 철근콘크리트 복원, 이명박 정부의 국가 상징 거리 사업, 오세훈 시장의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 구상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권력의 상징 조작 무대가 됐다. 관광이라는 명분도 그 연장이 될 수 있다는 경계심은 쉽게 걷히지 않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