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아이들]⑥한·덴마크 외교 문서 보니
한국은 북한의 흑색 선전에 입양 규제 강화
덴마크, 외교 채널 총동원해 입양 확대 요구

편집자주해외입양의 역사는 70여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직후 고아를 줄이기 위해 시작된 해외입양은 복지 예산을 아끼고 외화까지 벌어다 준다는 인식 아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로 입양된 이들의 삶과 권리는 방치됐다. 해외입양과 관련한 수십 년의 기록에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그 구조적 무관심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해외입양인 200여명이 국가에 전하는 목소리를 통해서는 해외입양의 문제점과 과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시아경제가 해외입양의 실상을 깊이 있게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한국은 1968년부터 1974년까지 덴마크로 총 2000여명의 아동을 입양 보냈다. 특히 1973년과 1974년에는 한해에 덴마크로 보내는 아동이 500명이 넘을 정도로 그 비중이 높았다. 그러던 1974년 11월, 한국 정부가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로의 해외입양 절차를 강화하자 덴마크 정부는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해 재검토하길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1976년 덴마크에 대한 입양 할당제(쿼터)에서 장애 아동을 제외한 데 이어 이듬해는 쿼터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1974년 11월 주덴마크 한국대사관에서 작성한 '한국 고아 입양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 1973년 덴마크로 입양된 아동을 정상아, 불구아로 나눠 557명으로 기록했다. 1970년부터 5년 동안 총 1775명의 아동이 덴마크로 입양됐다. 고아 입양 사업의 장점에 대해선 '입양 가족들로 하여금 한국과의 일종의 연대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이들을 친한세력으로 육성·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썼다. 다만 동시에 '상업적 거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며 문제 의식을 드러냈고, 그해 정부는 덴마크에 대한 해외입양 규제를 강화했다. 출처 국가기록원

1974년 11월 주덴마크 한국대사관에서 작성한 '한국 고아 입양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 1973년 덴마크로 입양된 아동을 정상아, 불구아로 나눠 557명으로 기록했다. 1970년부터 5년 동안 총 1775명의 아동이 덴마크로 입양됐다. 고아 입양 사업의 장점에 대해선 '입양 가족들로 하여금 한국과의 일종의 연대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이들을 친한세력으로 육성·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썼다. 다만 동시에 '상업적 거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며 문제 의식을 드러냈고, 그해 정부는 덴마크에 대한 해외입양 규제를 강화했다. 출처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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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아시아경제가 해외입양인 권익옹호 단체인 비영리 사단법인 '뿌리의집'으로부터 입수한 1974년부터 1977년까지 한국과 덴마크 간의 해외입양 관련 10여건의 내부 문서에는 이 같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당시 두 나라 사이의 가장 큰 현안이 해외입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덴마크는 더 많은 한국아동을 더 신속하게 받으려 외무부·법무부 등 자국 내 부처 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한국을 전방위로 압박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 해외입양을 줄이는 조치가 양국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20여년간 뿌리의집에서 해외입양인의 인권보호 운동을 해온 한분영씨는 해당 문건에 대해 "한국과 덴마크의 외교적 협상 문건에서 아동의 건강이나 복지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양국 간 해외입양은 마치 비밀스럽고 정치적인 거래처럼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1974년 12월 서울 찾은 덴마크 대사

1974년 12월12일, 주일 덴마크 대사인 튀으 달고르(Tyge Dahlgarrd)는 한국의 고재필 보건사회부 장관을 만나 해외입양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덴마크는 한국에 대사관이 없었고, 주일본 대사관이 한국과 일본을 모두 관할했다. 두 사람의 회담 문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서울을 방문 중인 지난 12일, 나는 한국의 고재필 보건사회부 장관을 찾아갔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한국 정부가 덴마크와 다른 스칸디나비아 부부들의 한국 영아 입양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중략) 한국은 앞으로 덴마크 부부가 한국 아기를 입양할 경우 양부모가 직접 한국에 와야 한다는 조건을 두기로 했다. 다만 이 제도는 아직 합의되지 않은 입양 건부터 적용될 것이며, 이미 합의된 약 200건의 입양은 기존 방식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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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 정부는 위의 내용처럼 양부모의 한국 방문·체류 조건을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1977년부터 매년 20%씩 해외입양을 줄여 1982년에는 완전히 중단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입양 절차를 강화하게 된 배경엔 의외로 '북한'이 있었다. 북한 측이 "한국이 아동을 판매한다"는 정치적 흑색선전을 퍼트려 국제적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덴마크 대사는 고 장관에게 한국이 북한의 주장에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이 의도했던 목표를 이루게 하는 셈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북한의 선전성 주장에 대한 한국 당국의 반응에 나는 놀라움을 표했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를 통해 의도했던 바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입양 절차에 제동을 걸고 덴마크와 한국 간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그것이다."

고 장관은 덴마크 언론이 한국·덴마크 간 입양 문제에 대해 적절하고 사실을 바로잡는 보도를 내놓는다면, 한국 정부는 제재 조치를 철회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덴마크 대사도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 "덴마크 언론을 통해 이 사안이 바로잡힐 수 있도록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여할 것을 건의한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1974년 12월 주일 덴마크 대사가 한국의 고재필 보건사회부 장관을 만난 후 작성한 보고서 일부 발췌. 그는 "북한의 선전성 주장에 대한 한국 당국의 반응에 나는 놀라움을 표했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를 통해 의도했던 바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입양 절차에 제동을 걸고 덴마크와 한국 간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했다. 뿌리의집 제공

1974년 12월 주일 덴마크 대사가 한국의 고재필 보건사회부 장관을 만난 후 작성한 보고서 일부 발췌. 그는 "북한의 선전성 주장에 대한 한국 당국의 반응에 나는 놀라움을 표했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를 통해 의도했던 바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입양 절차에 제동을 걸고 덴마크와 한국 간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했다. 뿌리의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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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제는 차별적" 덴마크 정부의 압박

1976년 9월13일 덴마크 외무부에서 작성된 내부 보고서를 보면, 한국 측은 공문을 통해 덴마크에 1975년 10월15일부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스칸디나비아 국가로의 입양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그 조건은 ▲입양은 승인된 한국 및 덴마크 기관을 통해 중개돼야 함 ▲월별 입양 아동 수는 20명을 초과할 수 없음(쿼터제) ▲입양아를 포함해 자녀가 5명 이상인 가정에는 입양 허가를 하지 않음 등이다. 덴마크 측은 1975년 12월 이러한 규정에 대해 "차별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후 한국 정부는 양부모가 직접 한국에 와서 아이를 데려가는 경우와 신체 장애가 있는 아동은 쿼터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났다.


1976년 9월11일부터 15일까지 김경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국제정치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코펜하겐을 방문해 덴마크 외교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과 회담을 가졌다. 당시 방문은 제31차 유엔(UN) 총회를 앞두고 한국 측 입장을 설명하고 덴마크의 지지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작성된 여섯 페이지짜리 회담 기록을 보면 덴마크 정부는 9월14일 김 특보와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한국에 쿼터 폐지 검토를 거듭 요구했다.

1976년 9월 덴마크 외무부가 한국의 김경원 대통령 특보와 회담을 가진 후 작성한 보고서. "덴마크 측은 한국에서 덴마크로의 입양에 적용되는 쿼터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덴마크가 다른 나라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전히 많은 덴마크 가정이 한국 아동을 입양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썼다. 뿌리의집 제공

1976년 9월 덴마크 외무부가 한국의 김경원 대통령 특보와 회담을 가진 후 작성한 보고서. "덴마크 측은 한국에서 덴마크로의 입양에 적용되는 쿼터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덴마크가 다른 나라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전히 많은 덴마크 가정이 한국 아동을 입양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썼다. 뿌리의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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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측은 입양 문제를 제기하며, 한국에서 덴마크로의 입양에 적용되는 쿼터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덴마크가 다른 나라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전히 많은 덴마크 가정이 한국 아동을 입양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특보는 쿼터 설정은 차별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유럽 국가의 인구 규모와 비교해 한국 아동의 입양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것을 우려해 설정된 것이며, 입양된 아이들이 현지 사회에 어떻게 통합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덴마크 측의 요청을 기억하겠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약속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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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전방위 해외입양 요구, 결국

더 많은 한국 아동을 입양하기 위한 덴마크 정부의 끈질긴 욕망은 1977년에도 계속됐다. 이번엔 법무부가 가세했다. 서울에 주재할 덴마크 대사에게 한국 측과 만나 쿼터 폐지 또는 확대 요청을 할 것을 당부했다.


1977년 1월 덴마크 법무부에서 작성된 문서를 보면 "서울에 주재할 대사가 신임장 제정(제출) 방문 시 한국 정부에 대해, 덴마크 부모의 한국 아동 입양 건수에 대한 쿼터를 폐지하거나 확대하는 방안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며 "최소한 쿼터 축소만큼은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썼다.


덴마크의 수년간 거듭된 압박의 결과, 한국 아동의 덴마크 입양 쿼터제는 1977년 2월 양국 간 회담을 통해 결국 철폐됐다. 한씨는 당시 한국에서 직접 아이를 데려온 덴마크 양부모들에 대해 "그들은 한국 방문 시 입양 목적을 함구해야 했고, 공항의 별도 공간에서 아이를 인계받는 등 매우 은밀하고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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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덴마크는 당시에도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남북한의 분단과 한국의 권위주의적 정치 상황에 대해 알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입양 시스템을 관철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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