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아이들]⑦"불법 해외입양은 '강제실종' 범죄…한국 해결 안 하면, UN이 나설 것"
뿌리의집 피터 뮐러 대표·한분영씨 인터뷰
76년 덴마크로 입양된 베른씨 사례 제시
"부산 고아원 이송된 적 없다" 증거 확보
진화위 진실 규명 이어 형사 고소 진행
"한국 정부는 2029년까지 해외입양을 중단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입장에선 2028년 말까진 인권 침해 범죄를 계속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멈추기로 결정했다면 지금 당장 멈춰야 합니다. 왜냐하면 해외입양이 지속되는 한 더 많은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뿌리의집 소속 피터 뮐러 공동대표와 한분영 활동가가 지난 23일 서울 부암동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해외입양인들과 밤낮없이 주말에도 온라인 미팅을 한다. 한씨는 "한국어를 포함해 총 9개의 언어로 소통해야 하고, 16개의 서로 다른 시간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동주 기자
피터 뮐러 뿌리의집 공동대표는 지난달 23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이후부터 70여년간 이어져 온 해외입양의 역사를 즉각 끊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사단법인 뿌리의집은 20여년 동안 해외입양인의 가족 찾기와 권익 보호, 국제 연대활동 등의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변호사이자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 대표이기도 한 뮐러 대표는 한국에 온 지 4년 동안 4000여건의 해외입양 사례를 다뤘다. 양부모의 학대·성폭력 사건부터 입양 서류 조작, 아동 납치·유괴 의혹 등 해외입양과 관련된 수많은 인권 침해 사건을 목격했다. [관련 기사= 해외입양인 174명이 말했다…"뿌리 못 찾고, 이방인으로 살아요"]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는 2029년까지 해외입양 숫자 0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입양인들의 인권 침해 문제를 고려하면 해외입양은 즉시 중단되는 게 맞다고 뮐러 대표는 말했다.
그는 1976년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요아킴 포우 베른(Joakim Fog Bern·한국 이름 김영식)씨의 사연을 본인 동의하에 공유했다. "베른씨는 입양기관 한국사회봉사회가 작성한 거짓 입양 서류 때문에 40년 넘게 자신을 부산 남광보육원 출신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사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부산은 간 적도 없었죠. 가짜 이야기를 진실이라 평생 믿고 살아온 거에요." 자신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는 베른씨의 거듭된 요구에도 한국사회봉사회는 '친가족의 개인정보는 입양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뮐러 대표는 "남광보육원은 부산 소재의 국가 연계 고아원으로, 해외입양을 위한 아동 공급 기관 역할을 해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남광보육원 관련 사건만 100건이 넘는다"며 "한국사회봉사회와 남광보육원 두 기관은 해외입양을 더 쉽게 보내기 위해 서류를 조직적으로 위조한 것"이라고 했다.
베른씨는 실제 가본 적도 없는 부산의 '기아(버려진 아이)'로 등록된 채 살아왔고 지금은 친생부모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해외입양 됐는지 명확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아무도 없다. 이 사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화위) 2기 조사를 통해 지난해 3월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정났고, 뿌리의집은 베른씨를 대신해 경찰에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를 진행했다.
뮐러 대표는 "지금까지 뿌리의집은 베른씨 사례를 포함해 총 13건을 경찰에 고소했는데, 이 가운데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5건이 각하돼 이의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해외입양인 중에는 어렸을 적 길에서 낯선 사람에게 납치당해 시설로 간 기억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사례는 유엔(UN)에서 정한 '강제실종'으로 보기 충분하며, 강제실종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밝혔다.
피터 뮐러 뿌리의집 대표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해외입양은 인권 침해이자 범죄 행위"라며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2029년 해외입양 제로(0) 계획에 대해선 "불이 나서 타고 있는 집을 보고도 나중에 와서 불 끄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윤동주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UN의 강제실종방지협약에 따르면, 강제실종이란 국가 기관 또는 국가의 허가, 지원 또는 묵인하에 개인이나 집단이 사람을 체포, 감금, 납치 등으로 실종자의 생사 또는 소재지를 은폐해 법의 보호 밖에 놓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뮐러 대표는 한국이 2023년 3월 강제실종방지협약 당사국이 된 만큼 국내에서도 강제실종 사건들을 조사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검찰과 같은 수사기관이 강제실종 사건 조사에 끝까지 나서지 않는다면, 향후에는 우리가 UN 강제실종방지위원회에 직접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했다. 강제실종방지협약 31조에 따르면 당사국의 협약 위반을 주장하는 피해자 또는 단체는 UN 강제실종위원회에 직접 조사 신청을 할 수 있다.
DKRG 공동대표이자 뿌리의집 활동가 한분영씨는 여전히 굳게 입을 닫고 있는 덴마크 정부에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에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5.2%)는 한국이 미국(67%), 프랑스(6.6%), 스웨덴(5.8%)에 이어 4번째로 입양을 많이 보낸 나라다.
한씨는 "덴마크는 공식적으로 1970년부터 한국과 해외입양을 시작했지만, 2010년까지 40년 동안 단 한 번도 관련 보고서를 낸 적이 없다"며 "아이들이 어떻게 모집되는지, 부모의 동의는 제대로 받은 건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덴마크는 민주주의·인권·자유의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국가로 알려졌지만, 해외입양 아동만큼은 정치적 거래 대상이자 물품처럼 취급했다"며 "한국의 진화위처럼 덴마크 내에서도 공식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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