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높아진 기능등급 계단에 우는 건설근로자
서동빈씨(32)는 10년 전 아버지를 따라 미장일을 시작했다. 그는 "현장 경력 30년 넘은 아버지의 퇴직공제 산정 근무일수가 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 현장 작업자 A씨는 "한 달에 22일을 나갔는데 사업주가 16일만 퇴직공제로 신고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실제 일한 날짜를 딱 떨어지게 잡아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경력을 증명할 길이 없어 숙련공 대접을 못 받는 건설 기능인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게 기능등급제다. 취재 과정에서 이를 주목한 건 정부 개편 방향에 대한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불만 목소리가 적잖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2년부터 개인 근로일수(퇴직공제·고용보험 신고일수)를 '직종별 연평균치'로 나눠 등급을 매기는 방식의 기능등급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직종과 관계없이 연간 186일을 일괄 적용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엔 미장, 도장 등 업무 특성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 연간 근무일수를 충족해야 '1년 경력'으로 인정받았는데, 앞으로는 직종 관계없이 연간 무조건 186일을 채워야 한다는 얘기다. 대부분 직종에서 경력 쌓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다. 정부는 기존 방식으로는 최상위 등급인 '특급'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건설인들은 기존 틀에 최신 데이터를 반영해 직종별 평균치만 다시 계산하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한다.
개편 방향뿐 아니라 정부가 경력에 필요한 일수를 연간 186일로 정한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1년 365일에서 휴무일과 기상 악화로 쉰 날 등을 뺀 '날씨 좋은 평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출근일수를 여전히 축소 신고하는 현실은 외면한 채 경력 산정 기준이 되는 연간 근무일만 높인 것이다. 기능등급제 위탁 관리 기관인 고용노동부 산하 건설근로자공제회는 186일이라는 기준을 만들고 개선안을 짜는 데 이미 2억6000만원의 연구용역비를 썼다. 이후 비판 여론이 생기자 다시 7000만원을 들여 '186일 기준의 한계'를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추가로 발주했다. 3억원 이상을 썼지만 합리적인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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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직종별로 등급을 더 잘게 쪼개고 등급이 오를 때마다 평가 시험을 치르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그만큼 등급 부여를 깐깐하게 하겠다는 건데, 제도는 보다 현실에 맞아야 한다. 현장에선 "최고등급인 '특급'을 따려면 55년이 걸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의 개편 방향은 위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놓기도 전에 계단 높이부터 올리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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