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도 넘보는 AI 신약…인실리코 메디슨, 릴리 4조 기술이전의 의미
저분자 화합물 기반 후보물질 기술이전
AI 신약, 플랫폼·후보물질 도출 단계 넘어
대사질환 파이프라인서 애셋으로 평가
일라이 릴리가 인공지능(AI) 신약 개발사 인실리코 메디슨의 경구용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수용체 작용제를 최대 4조원에 기술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AI 신약 개발이 초기 타깃 발굴을 넘어 현재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주력인 대사질환 블록버스터 파이프라인으로 처음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분석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는 홍콩에 소재한 인실리코 메디슨과 총 27억5000만달러(약 4조원) 규모의 글로벌 라이선스 및 연구개발(R&D)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일라이 릴리는 인실리코 메디슨이 개발한 전임상 단계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독점 개발·제조·상업화 권한을 확보했다. 인실리코는 선급금 1억1500만 달러(약 1700억원)를 즉시 수령하고, 향후 개발·규제 승인·상업화 단계별 마일스톤(기술료)과 신약 매출에 대한 로열티를 받게 된다.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모두 펩타이드 기반의 피하주사제로 환자가 정기적으로 직접 주사를 놔야 하는 불편함이 크다. 아미노산이 연결된 단백질 조각인 펩타이드는 체내에 존재하는 호르몬과 구조가 유사해 약효와 표적 특이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소화 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고 장 점막 흡수율이 낮아 경구용 제제로 개발하기 어렵다. 반면 저분자 화합물은 분자량이 작고 구조가 단순해 위장관 세포막을 쉽게 통과하며 혈류로 원활하게 흡수되는 장점이 있다. 소화기관 내 분해를 견디도록 약물을 설계할 수 있으며, 화학 합성 방식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제조 원가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일라이 릴리 역시 저분자 화합물을 기반으로 1일 1회 복용하는 경구용 비만약 '오포글리프론'의 후기 임상을 진행하며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인실리코 메디슨이 발굴한 이번 후보물질은 매일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기존 경구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주일에 한 알만 복용하도록 설계됐다.
이러한 기술적 도약은 인실리코의 자체 생성형 AI 플랫폼 '파마닷에이아이(Pharma.AI)'를 통한 '다중 매개변수 최적화'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인실리코의 AI는 수많은 화학 구조를 단기간에 시뮬레이션해 용해도를 극대화하고 체내 대사 및 배출 속도를 늦추는 최적의 분자 구조를 도출해냈다.
이번 계약은 AI 신약이 초기 타깃 발굴 영역을 넘어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가장 큰 판으로 불리는 비만 및 대사질환 파이프라인으로 진입한 첫 사례로 꼽힌다. 그동안 AI 신약 개발은 주로 희귀질환이나 특허가 만료된 기존 표적의 항암제 발굴 등에 집중되며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이번 대규모 기술이전을 기점으로 AI 기반 신약이 글로벌 주류 제약 시장의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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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물질이 아직 전임상 단계를 밟고 있음에도 일라이 릴리가 거액의 선급금을 지급한 건 AI가 도출한 신약 물질의 데이터 신뢰도에 대해 대형 제약사가 확고한 믿음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과거 글로벌 빅파마와 AI 신약 기업 간의 협력은 사노피나 로슈의 사례처럼 주로 다수의 신규 타깃을 탐색하거나 초기 플랫폼 단위의 공동 연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계약은 다수 타깃 탐색 위주 협력을 넘어 AI가 독자 설계한 단일 후보물질의 상업적 효용성을 직접 증명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삼진제약·프로티나·신테카바이오 등이 기존 비만치료제의 부작용을 줄이고 효능을 개선하기 위해 AI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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