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방콕 등 함께 부상
40년간 유일하게 꾸준한 주목
다양한 국제행사·IT 발전 토대

1986년 9월 20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제10회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개막식. 서울기록원

1986년 9월 20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제10회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개막식. 서울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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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컴백 공연을 봤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는 아침이라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즐겼다. 대중문화계에서 아이돌 그룹의 컴백은 쉽지 않은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840만명이 라이브로 지켜본 공연은 호평 일색이라 이 정도면 대성공이라 생각했다.


공연을 보며 약 40년 전 서울에서 지켜본 1986년 아시안게임이 떠올랐다. 1988년 '88올림픽'의 그늘에 가려진 면이 없지 않지만, 서울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치른 국제적 행사였다. 서울의 국제사회 데뷔 무대는 올림픽보다 아시안게임이 아닐까 여겨질 만큼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1986년 서울은 어떤 도시였을까. 그리고 당시 주목을 받은 여러 도시 가운데 과연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졌을까.


1986년 서울은 빠르게 변하는 도시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1980년대 초 시작한 지하철 공사를 비롯한 국제대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동시에 전두환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고, 억압받는 와중에도 민주화 운동은 계속 동력을 얻고 있었다. 1980년대 초와 비교해 경제 성장이 빨라지면서 젊은 세대가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198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3%였고, 그해 서울 인구는 약 16만명이 늘어 980만명에 달했다. 주택난은 극심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동과 상계동에서는 빈민촌을 철거하고 새로운 뉴타운 공사가 이어져 서울의 '아파트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크게 보면 1986년은 경제적 호황 속에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큰 미래 지향적 분위기였다.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여러 도시가 있었다. 1980년대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한 멕시코와 브라질은 불황에 빠져 있었다. 서울처럼 급성장하는 멕시코시티와 상파울루는 민생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1968년 올림픽을 열었던 멕시코시티는 1986년 월드컵을 열어 주목받았다. 서울 이외에도 아시아 몇몇 도시가 관심을 받았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당시 유행하는 신자유주의 모범 도시로 자주 언급됐다. 중국이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한, 홍콩 바로 옆 선전은 1990년대 폭발적 붐을 앞두고 있었다.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룬 태국의 수도 방콕 역시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특히 관광 산업이 발전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피플 파워 혁명'이라는 민주화 운동의 무대로 또 다른 의미의 주목을 받았다.


1986년 당시 멕시코시티에서부터 서울까지 주목을 받았던 도시들의 공통점은 국제 행사를 치르거나 빠른 변화에서 비롯된 활력이었다. 국제 행사를 치르거나 활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는 무수히 많은 도시를 떠올려볼 때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을 치른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1986년 당시 뉴욕·런던·파리·도쿄 등 이른바 '4대 세계 도시'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19세기 가장 큰 제국의 수도인 런던과 파리, 20세기 후반 초강대국 미국의 핵심적 산업 도시 뉴욕, 그리고 경제 규모가 2위까지 올라간 일본의 수도 도쿄는 누가 뭐래도 당시 압도적인 선두 도시였다.


당시 이 도시들이 속한 국가는 세계 총생산의 약 55%를 차지했다. 제국주의 역사에서 비롯한 패권의 후광이기도 했지만, 이 도시들은 수많은 분야의 정점에 서 있기도 했다. 그 후로 40년 동안 중국·인도·한국·대만·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해 이들 국가의 세계 총생산 비율이 35%로 떨어지긴 했지만, '4대 세계 도시'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그렇다면 당시 새롭게 주목을 받았던 신흥공업국의 도시, 즉 멕시코시티, 상파울루, 싱가포르, 홍콩, 방콕, 마닐라, 서울의 오늘은 어떨까.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주목받은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 멕시코시티와 상파울루는 당시 불황에서 회복하는 듯하다가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지면서 위험하다는 도시 이미지가 형성됐다.


신자유주의 유행이 약해지면서 싱가포르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고,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뒤 자유로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약해졌다. 방콕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크게 타격을 입은 뒤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마닐라는 '피플 파워 혁명' 이후로는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은 서울이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21일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은 서울이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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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떤 면에서 달랐던 걸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서울은 첫 국제 행사인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규모가 큰 국제 행사를 계속 열어왔다. 1988년 하계 올림픽과 일본과 공동 주최한 2002년 월드컵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지만,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분야의 국제 행사를 치렀다.


또한 한국의 거점 도시라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처럼 다른 지역에서 국제 행사를 열어도 서울이 긍정적 영향을 받는다. 많은 국제 행사를 통해 서울은 지속해서 국제무대에서 활력을 창출하는 주요 도시라는 신호를 발신한다.


둘째, 서울은 세계의 변화 방향에 맞춰 나갈 뿐만 아니라 어느덧 변화를 이끄는 도시로 발전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의 발전으로 한국, 나아가 서울의 이미지가 좋아졌다. 동시에 가속화된 디지털 혁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1990년대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률의 상승을 통해 한국은 'IT 강국'으로 부상했다. 민주주의와 디지털 혁명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에서 탈출하는 원동력이 됐고 2000년대 '다이내믹 코리아'의 토대가 됐다.


이러한 지점은 서울이 독자적으로 주도한 결과가 아니다. 각 시대의 국가 정책과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자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도시이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컴백 공연이 서울의 상징적 공간 광화문에서 열렸다.


서울처럼 40년 동안 세계의 관심을 꾸준히 받아온 도시는 언제나 주요 도시로 꼽혀온 '4대 세계 도시' 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서울은 이미 그 그룹에 진입한 게 아닐까? 1986년 아시안게임을 서울에서 지켜보던 그때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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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1986년 서울, 40년의 식지 않는 활력을 되새기다 원본보기 아이콘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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