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상담도, 청구도 어렵다
디지털 상담 확대에도 이용 격차 여전
보험금 민원 60~80% '보상' 단계에 집중

"휴대폰으로 하라는데, 뭘 자꾸 인증하라 하고… 서류 찍어서 올리라는데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예."


부산에 사는 김정애씨(70·여·가명)는 2025년 10월 시내버스 급정거 사고로 넘어지며 허리와 무릎을 다쳐 12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통원치료까지 마친 김씨는 보험금을 청구하려 했지만 결국 스마트폰 대신 보험사 지점을 찾았다. "이거는 도저히 내가 못 하겠더라예. 사람 만나서 설명 듣고 하는 게 훨씬 마음 편치예."

"뭘 자꾸 누르라 하고 서류는 찍어서 올리래"…보험금 청구하려던 김 할머니, 결국[AI 보험, 혁신의 그늘]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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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봇·모바일 청구 확산에도 설계사·자녀 의존 여전…"잘못 누를까 무서워"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 도입이 확대되면서 영업·마케팅부터 가입심사, 보험금 청구·지급까지 보험 전 과정에 디지털이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생성형 AI 도입으로 챗봇 상담, 모바일 보험금 청구, 설계사 지원, 내부 업무 자동화 등 활용 범위도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뭘 자꾸 누르라 하고 서류는 찍어서 올리래"…보험금 청구하려던 김 할머니, 결국[AI 보험, 혁신의 그늘]① 원본보기 아이콘

실제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상담의 절반 이상을 비대면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주요 업무의 약 75%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삼성생명은 챗봇 기반 디지털 안내 서비스를 도입했고, 한화생명은 통합 금융 플랫폼 형태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구축했다. 손해보험업계 역시 모바일 간편 청구와 AI 상담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러한 시스템이 단순 보조 수단이며, 여전히 사람이 전체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고령층을 위해 글씨 크기 확대, 안내 기능 강화, 전용 상담사 운영 등 보완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 보험금 청구 과정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고령층의 경우 '잘못 누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낯선 화면 구성, 반복되는 인증 절차 탓에 시도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챗봇 상담과 모바일 접수 등 선택지는 늘었지만,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강원도 양양에 사는 신용자씨(72·여·가명) 역시 보험금 청구를 시도하다 결국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괜히 잘못 누르면 신청이 꼬일까 봐 겁이 나더라고요. 그냥 애 불러서 해달라 했어요."


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설계사들도 비슷한 상황을 전했다. 28년 경력의 DB손해보험 설계사 장옥자씨(가명)는 "자녀가 대신 처리해주지 않으면 서류를 팩스나 택배로 보내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모바일이 더 편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작은 실수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시도를 꺼리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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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형 상담 구조에 "뺑뺑이 돈다" 불만도…보험 민원 60~80% '보험금 지급'

문제는 상담 방식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보험사들이 상담원과 바로 연결되지 않고 AI 챗봇이나 음성봇, 디지털 자동응답전화(ARS)를 거쳐야 하는 '단계형 상담 구조'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령층에게는 이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장벽이다.


실제 외국계 보험사 A사 고객센터에 접속해 상담원 연결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표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자 "휴대폰 화면을 보며 업무를 처리해 달라"라는 안내가 나온 뒤 통화가 곧바로 종료됐다. 상담원을 연결하려면 화면 우측 상단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야 하지만, 기기 조작이 서툰 고령층은 이를 인지하지 못해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다. 결국 상담 절차를 이어가지 못한 채 혼란만 가중되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는 현장에서 고령층을 직접 응대하는 상담사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한 보험사의 콜센터 상담사 이다정씨(가명)는 "고령 고객은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부터 단계별로 설명이 필요하다"며 "AI 도입 이후 상담 연결 방법을 몰라 전화를 끊거나 같은 안내를 반복해서 듣는 이른바 '뺑뺑이'와 관련된 불만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상담 인력을 대체하면서 상담원 수 자체도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 국내 3대 손해보험사 가운데 한 곳인 B사의 콜센터 인원은 최근 3년간 전반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981명에서 2024년 960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963명으로 소폭 늘었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18명 감소한 수준이다.


B사는 자동차 사고 처리 안내와 긴급 출동 접수 등 자동차보험 관련 업무에도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한 고령자의 경우 가뜩이나 당황한 상태에서 상담 연결까지 지연되면서 초기 대응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연주 든든한콜센터지부 지부장은 "사고 접수의 경우 고객들이 당황하고 힘든 상태에서 전화를 거는 경우가 많은데,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사고 처리에 불편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AI 상담을 거치거나 연결이 지연되면서 불만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령층을 중심으로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은 보험금 관련 민원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금 관련 민원이 전체의 60~8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보인다. 보험금 부지급률이 1% 미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급 지연이나 처리 과정에서의 불편이 민원 제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국 AI 확산이라는 흐름 속에서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보험 서비스 이용 전반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술 확산 속도에 맞춰 신뢰와 접근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혜원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콜센터 등 기존 채널을 함께 유지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초보 이용자도 실수했을 때 쉽게 되돌아갈 수 있도록 사용자환경(UI)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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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닌 기계, 음성봇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박소영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험산업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AI 도입 과정에서도 설명가능성과 책임성을 내재화한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며 "AI 문해력이 낮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소비자는 잘못된 AI 조언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만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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