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됐으니 그냥 먹었다"…'환불 악용'에 뿔난 점주들
환불해달라 요청해놓고 주문한 음식은 꿀꺽
안심번호 뒤 숨어 '반복 환불고객' 확인 불가
플랫폼 협조 미온적…"자영업자만 속 터져"
"아니, 환불해달라면서요… 근데 다 드셨다고요?"
서울 관악구에서 제빵점을 운영하는 곽수환씨(39)는 지난달 17일 분통 터지는 '주문 취소' 통보를 받았다. 4만3000원어치를 주문했던 고객이 '음료가 흘렀다'며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랩으로 밀봉까지 한 음료가 터졌을 리 없다고 판단한 곽씨는 경찰과 함께 환불된 음식을 수거하기 위해 고객의 집을 찾았지만, 이미 빵과 음식을 절반 가까이 먹은 상태였다.
'주문 취소'를 통보한 고객은 20대 여성 2명. 말문이 막힌 곽씨를 향해 이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어차피 취소된 음식인데 배고파서 그냥 조금 먹었다"고 말했다. 곽씨를 더 허탈하게 만든 건 배달 플랫폼 쿠팡이츠의 대응이었다. 현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담원이 "자체 폐기를 지시한 적 없다"고 했지만, 문제가 커지자 본사 측에서 "우리가 폐기를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 금천경찰서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곽씨는 "명백한 사기 범죄로 볼 정황이 있어도 플랫폼이 관련 자료 제출에 미온적이라 속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자영업자 곽수환씨가 고객으로부터 회수한 빵과 음료를 확인하고 있다. 포장이 뜯긴 채 반환된 제품은 절반가량 남아 있는 상태다. 독자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배달 플랫폼의 '무검증 환불' 시스템을 악용해 음식을 공짜로 취식하는 사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점주들은 직접 현장을 적발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고객을 잃지 않으려는 플랫폼의 소극적 대응으로 피해가 자영업자에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자영업자 커뮤니티 등에서는 곽씨와 유사한 점주들의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짜장면 21개를 주문한 뒤 매장에서 쓰지도 않는 '의료용 밴드'가 나왔다는 허위 신고로 전액 환불을 받아 갔다는 사연이 공분을 샀다. 해당 점주는 "음식을 회수해보니 밴드는 고객의 쓰레기봉투에서 나온 것과 동일했다"며 "음식은 다 먹은 상태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 현장에선 배달 플랫폼의 '방임'이 문제를 더 키운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들 시스템이 판매자보다 소비자 보호에 철저히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고객 연락처는 가상 안심번호로 표시되는데, 연결 링크의 유효 시간은 단 2시간에 불과하다. 곽씨는 "상담원은 고객이 연락을 받지 않아 연결할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2시간이 지나면 이마저도 끝"이라고 했다.
점주들이 상습적인 '악성 이용자'를 걸러낼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다. 플랫폼은 고객의 취소 이력이나 상습성 여부는 '악용 우려'를 이유로 점주에게 비밀에 부치고 있다. 점주 입장에선 주문이 들어와도 이 고객이 상습적인 허위 환불자인지, 선량한 손님인지 알 길이 없는 셈이다. 만일 주문을 거부했다가 단골을 잃을까 선제적 대응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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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21개를 주문한 뒤 매장에서 쓰지도 않는 '의료용 밴드'가 나왔다는 허위 신고로 전액 환불을 받아 갔다는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분을 샀다. 해당 점주는 "음식을 회수해보니 밴드는 고객의 쓰레기봉투에서 나온 것과 동일했다"고 주장했다. 보배드림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수사 단계까지 가도 플랫폼이 비협조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곽씨 사건을 수사하며 피의자의 다른 플랫폼 상습 취소 이력을 확인하려 영장을 집행하는 등 자료 확보에 나섰지만, 쿠팡이츠 등 플랫폼의 대응이 지연되면서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법 당국은 이 같은 행태를 명백한 범죄로 보고 엄벌하는 추세다. 지난해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거짓말로 수차례 환불받아 사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홍대범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는 "환불 비중이 높은 비상식적 행태는 정상 소비로 보기 어렵다"며 "플랫폼이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하고 점주에게도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보 공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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