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솔로 앨범 들고 한국 찾는 유선희
주형기·빌리 조엘 음악으로 지금의 자신을 말하다

리허설 20분 전 통화였다. 이탈리아 현지 시간으로 28일 오전 11시10분. 유선희는 조금 서둘러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말은 급하지 않았다. 새 앨범 'Circle' 이야기를 꺼내자 곡 설명부터 하지 않았다. 음악과 연기, 한국과 유럽,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감정이 어떻게 다시 한 점으로 이어지는지부터 말했다. 그는 'Circle'을 "원형"이자 "하나의 연결된 고리"라고 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이번 앨범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그 안에 거의 다 들어 있었다.

유선희는 10년 만에 새 연주 앨범 Circle 을 발매하고, 한국을 찾는다. PIANO CLASSICS

유선희는 10년 만에 새 연주 앨범 Circle 을 발매하고, 한국을 찾는다. PIANO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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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는 피아니스트로 먼저 알려진 사람이다. 예원학교를 거쳐 열세 살에 협연자로 데뷔했고, 이후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으로 건너가 연주자의 시간을 오래 보냈다. 최근에는 난니 모레티의 '찬란한 내일로'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4월3일 열리는 '판타지아에무: 유선희-Circle'은 그 두 시간을 한자리에 묶는 프로그램이다. 유선희가 출연한 '고양이 돌보미'와 '찬란한 내일로'를 먼저 상영하고, 뒤이어 토크와 피아노 라이브를 잇는다.


다만 유선희가 이번 자리를 설명하는 방식은 단순한 이력 소개와는 조금 달랐다. 그는 음악과 배우라는 두 세계가 이번 기회에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에무는 그 말을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받아냈다. 영화를 먼저 걸고, 짧은 토크 뒤 'Circle' 수록곡을 직접 듣는 순서다. 제목이 행사의 구조가 된 셈이다. 유선희에게 'Circle'은 새 음반의 이름이기 전에, 따로 흘러온 시간을 한 원 안에 모으는 방식에 더 가깝다.

이 앨범의 출발은 뜻밖에도 멈춤이었다. 유선희는 2020년 이탈리아 봉쇄 시기를 떠올리며, 연주와 활동이 끊긴 뒤에는 피아노 음악을 듣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시칠리아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11시간 운전길에 빌리 조엘의 'Fantasies & Delusions'를 들었다. 그 순간 "정말, 다시 피아노 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고 했다. 다만 그 마음은 예전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그전과 같은 레퍼토리보다는 이런 신선한 레퍼토리"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Circle'은 복귀를 알리는 음반이라기보다, 다른 결의 음악을 붙들고 다시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음반에 가깝다.

배우 겸 피아니스트 유선희. 그는 음악과 배우라는 두 세계가 이번 기회에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PIANO CLASSICS

배우 겸 피아니스트 유선희. 그는 음악과 배우라는 두 세계가 이번 기회에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PIANO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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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한국계 영국인 작곡가 주형기와 빌리 조엘의 음악이 함께 놓였다. 유선희는 이 음반을 두고 자신과 주형기, 빌리 조엘,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세 아티스트의 삶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하나의 고리로 닫히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2024년 가을 비엔나 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주형기 작곡가가 직접 작업에 함께했다고도 했다. 봉쇄의 시간, 다시 건반 앞에 앉고 싶어진 충동, 배우로 살아본 뒤 달라진 몸의 감각이 이번 앨범 안에서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10년 만의 피아노 솔로 앨범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무게를 얻는다. 유선희는 첫 솔로 앨범을 낼 때는 부담이 컸고, 테크닉과 완벽성 쪽으로 더 기울어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변화의 한복판에는 연기가 있다. 피아노가 악기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연기는 목소리와 표정, 몸이 먼저 반응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그 직접성을 지나온 뒤 연주는 더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더 대담해졌고, 관객 앞에서 두려움도 줄었다고 했다. 그러다 툭,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렇습니다." 이번 앨범의 결은 그 말에 가깝다. 잘 짜인 음반인 동시에, 전보다 덜 숨기는 음반이라는 뜻이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그가 특히 주형기의 'Childhood 1979'에 오래 마음이 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선희는 그 곡의 서사보다 먼저 음악이 자신에게 와닿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주형기의 유년 이야기가 자기 감각과 겹쳐졌다고 했다. 유럽에서 동양인의 얼굴로 살아간다는 느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내면 사이의 간극, 한국인 같다가도 유럽인 같고 또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 감정의 흔들림. 그는 그것을 거창한 담론이라기보다 "조그마한 일상 속"에서 계속 스치는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Childhood 1979'는 남의 유년이 아니라, 자기 안의 오래된 감각을 건드리는 곡이 된다. 'Circle'이 장르의 연결보다 감정의 연결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선희는 음악과 연기 사이의 균형을 "삶의 숙제"라고 했고, "약간 저의 운명" 같다고도 했다. 두 세계를 오가는 일은 그에게 이제 선택이라기보다 생활 방식에 가까워 보였다. PIANO CLASSICS

유선희는 음악과 연기 사이의 균형을 "삶의 숙제"라고 했고, "약간 저의 운명" 같다고도 했다. 두 세계를 오가는 일은 그에게 이제 선택이라기보다 생활 방식에 가까워 보였다. PIANO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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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선희의 무게중심은 피아노 쪽에 있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배우와 연주자의 삶은 둘 다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기간을 나눠 활동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음악과 연기 사이의 균형을 "삶의 숙제"라고 했고, "약간 저의 운명" 같다고도 했다. 두 세계를 오가는 일은 그에게 이제 선택이라기보다 생활 방식에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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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Circle'은 경력을 정리하는 이름이 아니다. 오래 흔들리던 것들이 겨우 같은 선 위에 올라서는 순간에 가깝다. 유선희는 이번 앨범에서 더 잘 보이려 하기보다, 더 정확하게 드러나려 한다. 'Circle'은 결국 유선희의 이력을 설명하는 음반이 아니다. 지금의 유선희가 자기 자신에게 닿는 방식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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