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아이들]①해외입양 국회 회의록 전수조사
33년간 단 8번의 회의… 방치된 아동 보호
고아 해결에 수익… '복지'라 생각했던 그들
88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된 아동수출… 최대치

편집자주해외입양의 역사는 70여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직후 고아를 줄이기 위해 시작된 해외입양은 복지 예산을 아끼고 외화까지 벌어다 준다는 인식 아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로 입양된 이들의 삶과 권리는 방치됐다. 해외입양과 관련한 수십 년의 기록에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그 구조적 무관심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해외입양인 200여명이 국가에 전하는 목소리를 통해서는 해외입양의 문제점과 과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시아경제가 해외입양의 실상을 깊이 있게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해외입양의 역사가 70년이나 지속된 배경에는 무관심한 국회와 정부가 있었다. 고아 해외입양을 독려하기 위해 1961년 '고아입양특례법'을 만든 후 미아(迷兒)의 해외이주허가를 제한한 1994년까지 국회는 이들을 방치했다. 해외입양은 국회 입법 지원으로 되레 확대됐고 고아들은 빠르게 보내졌다. 이후 30년도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해외입양 중단'을 약속했지만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


30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회의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1961년부터 1994년까지 33년간 국회에서 '해외입양'이 논의된 것은 단 8번에 불과했다.

8번의 회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해외입양 유지에만 집중했다. 회의록에는 해외입양을 '고아를 외국에 보내고 130달러 외환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사업'으로 평가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그대로 기록됐다. '호적이 넘어가면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지도 않을 것'이라며 책임에서 벗어난 흔적도 확인됐다. 국가의 무관심과 제도적 방치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아동을 국외로 보내는 구조는 고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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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외국 보내고 130달러 외환 획득… 양부모 혹사 사례 없을 것"

고아 해외입양을 공식 제안한 것은 정부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고아를 입양하는 절차를 간소화한 '고아입양특례법'은 1955년 7월 정부안으로 발의된 후 사회보건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1961년 제정됐다.


해외입양을 독려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이유는 있다. 1950년대 6·25전쟁으로 전쟁고아들이 쏟아졌고 혼혈아까지 방치됐다. 이들을 보호할 시설이 부족한 탓에 정부는 해외입양을 선택했다. 1954년 국외입양전담기관 설립에 관한 대통령령이 발효되면서 해외입양이 승인됐다.

33년간 국회에서 논의된 8번의 회의 역시 '해외입양 독려'에 초점이 맞춰졌다. '고아입양특례법'이 제정된 지 4년이 지난 1965년 당시 보건사회부 기획관리실장은 해외입양에 대해 "상대국에 대해서 매 인당 130달러 정도의 외환을 획득하는 동시에 국내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저희 고아들을 외국에 보내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라고 평가하며 외국에서 받는 이 비용을 법적으로 규정해 정당화하자고 제안했다.


해외입양 이후의 문제 발생 가능성은 묵살됐다. 같은 해 보건사회위에서 민주공화당 김성철 국회의원이 "그네들(입양아들)이 입양된 후에 양부모와 뜻이 안 맞을 때 학대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고 이럴 때 다시 귀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느냐, 법적 구제가 될 수 있는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보건사회부 차관은 "사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라 판단한다"고 답했다.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의 국적을 서둘러 정리하려는 시도들도 확인됐다. 이 해 마지막 상임위에서 한 전문위원이 관련법의 담긴 '고아의 제적'을 '입양아의 제적'으로, '양자가 된 그 고아가'를 '양자로 입적하여'로 수정 건의했다. 행정상 입양된 후 해당 아이를 입양아, 양자로 자동 판단하도록 해 국적이 자연스럽게 소멸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듬해에는 고아를 입양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가 이뤄졌다. 입양 과정에서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심사 기간을 20일에서 15일로 단축하며 "고아를 입양하러 오는 외국 사람들을 너무 오래 체류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사유를 남겼다.


국회는 해외로 입양한 이후의 책임에서도 스스로 벗어났다. 당시 법사위에서는 "한국에서 사는 동안은 신상에 관한 사항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외국에 데리고 갔는데 그 후에도 신상에 관해서 알선기관이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부담이 아니냐"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고아의 복지를 위해서 비근한 예로 노예로 삼는다. 천하게 종사시킨다. 이러한 경우에는 입양됨으로써 신분적인 손해가 더 막대하다. 그러한 것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양친 호적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다' '우리나라 통치권이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입양아들의 후속 관리책은 공백이 됐다. '해외부모 양친은 대한민국으로부터 보고의 요구가 있을 때는 이에 응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삭제된 것도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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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치른 1980년대 해외입양 최대… 전쟁 끝났는데 해외입양 지원 여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아동수출'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이어진 상황에서도 해외입양은 계속됐다.


1980년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이를 해외로 보낸 국가로 기록돼 있다. 1976년 12월 '고아입양특례법'이 '입양특례법'으로 바뀌면서 고아가 아닌 '보호시설에 보호받고 있는 아동'까지 입양이 가능해진 데 따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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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시작한 10대 국회에서 서울올림픽을 치른 13대 국회(1988~1992년)까지는 해외입양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현 국회 복지위 관계자는 "경제 부흥기와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며 불편한 이슈들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시기"라며 "전쟁 상황이 아닌데도 해외입양을 지원하는 법이 유지된 것은 해외입양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태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고아입양특례법' 제정 후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이 성인이 돼 뿌리를 찾기 시작한 1990년 중반부터는 달라졌다. 이들은 국내외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고 정부 차원에서도 고민이 시작됐다. 1994년 12월,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은 "입양될 아동이 미아 등인 경우에는 국외입양을 위한 해외이주허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자"라며 국내입양 활성화와 해외입양을 제한하는 개정안을 꺼냈다. 당시 국회 기록을 살펴보면, 1958년부터 1994년 9월까지 국내입양은 5만377명, 해외입양은 2배를 웃도는 13만1600명에 달했다.


1998년 해외입양인 3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김대중 대통령이 "여러분을 태어난 나라에서 기르지 못해 책임을 느낍니다"라고 공식 사과하며 국회 논의도 활발해졌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장애아동에 대한 양육보조금 확대 논의도 시작했다. 장애아동이 사회복지시설에 있을 때는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만 입양된 후에는 혜택이 끊기는 상황이 반영됐다. 2000년 국내입양아 1686명 중 장애아동은 18명인 데 비해 해외입양에서 장애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육박했다.


국회에서 해외입양에 대한 전면 중단이 처음 등장한 것은 10년이 더 흐른 2007년이다. 당시 장향숙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해외로 입양되는 아동의 대부분은 미혼모가 출산한 아동으로서 미혼모가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보충하자'라는 취지로 청원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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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해외입양 자체를 법으로 제한하자는 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이 등장했다. 최영희 통합민주당 국회의원은 "국가는 아동에 대한 보호의무와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국외입양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를 2016년 1월1일부터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아직 국내입양이 활성화되지 않아 제정이 이뤄지면 요보호아동의 우리나라 시설보호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당시 보건복지위에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는 "국내입양이 매년 1500명 정도로 계속 늘지 않고 있지만 입양기관에 대기하고 있는 아동들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며 해외입양 중단에 따른 단기적 부작용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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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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