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혹한기 버텨낼 토양 다져야
M&A 통한 회수·성장의 선순환 긴요
창업하기는 괜찮은데 살아남기는 어려운 나라. 벤처강국을 자임하는 한국이 마주한 이 단순하면서도 뼈아픈 사실 앞에서 우리는 '지원이 부족한가'라는 해묵은 질문을 반복한다. 국내 신생 기업의 5년 생존율은 주요국 평균을 밑도는 30% 중반대의 박스권에 갇힌 지 오래다. 이 수치가 절대적으로 낮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창업이 확대되는 속도에 견주면 여전히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의 창업 지원 규모는 비약적으로 확대됐고 이 중 상당 규모가 예비·초기 단계에 집중돼 있으므로 이 단계에서는 사업화를 위한 자금 융통과 시드 투자의 기회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매출이 발생하고 본격적인 양산이나 글로벌 확장이 필요한 시리즈 B·C 구간, 즉 스케일업 단계에 진입하면 지원의 밀도는 옅어지고 각자도생의 혹한기를 마주하게 된다.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수 십 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정부 지원은 업력 기준에 걸려 거의 받지 못하고 민간의 자금줄은 회수시장의 불확실성 앞에서 오그라든다. 초기 단계에선 정부가 제공하는 온기를 쬐며 그런대로 버텨내지만 데스밸리 구간에선 말 그대로 골짜기에 고립되는 것이다.
민간 투자 생태계와 정부 지원 구조의 엇박자도 여전하다. 정책자금은 아직도 고용 유지 현황이나 특허 개수 같은 경직된 지표를 쫓아다닌다. 미래 가치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시장을 탐색하고 개척해야 하는 성장기업들이 이런 허들 앞에서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내몰리는 일이 아직도 빈발한다. 기업들이 시장의 원리가 아닌, 지원 기준에 맞춘 사업을 하느라 혁신의 동력을 낭비하는 배경이다.
이런 구조를 바로잡으려면 초기 창업 단계에 상대적으로 더 집중된 모태펀드 비중을 과감하게 조정하고, 민간 금융권과 연계한 벤처 대출 모델을 활성화해야 한다. 지분을 희석하지 않으면서도 사업 확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평가지표에서 고용 인원 같은 수치의 비중을 확 낮추고 글로벌 매출 비중이나 재구매율 같은 시장 검증 지표에 방점을 찍는 식으로 시각 자체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시급한 것은 엑시트 경로의 현실화다. 국내 벤처투자 회수 시장은 여전히 기업공개(IPO)에 편중돼있다. 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 같은 주요 벤처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회수가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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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성장기업을 인수할 경우 일정 기간 계열 편입에 따른 규제 부담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등, M&A가 단순한 외형 확장이 아니라 혁신을 흡수하는 통로로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 회수 경로가 막히면 후속 투자가 위축되고, 이것이 성장의 정체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창업은 출발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느냐다. 단순히 창업을 늘리고 그 통계를 확인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성장하고 회수되는 전 과정을 촘촘하게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길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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