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韓가전업계, '다음'을 증명할 시간
싸늘했던 LG전자 주주총회장
전략 내놨지만 냉정한 주주들
이젠 과감한 선택 필요한 때
"LG전자의 빛나던 영광이 비참하게 떨어져 있다. 책임을 통감하라."
23일 열린 LG전자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경영진을 향해 던진 이 한마디에 현장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앞서 회사가 올해 사업전략을 발표한 이후였음에도 그는 실적을 회복할 만한 성장 대안을 요구했다. 주주총회는 연중 단 한 번 시장의 평가가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다. 올해 LG전자 주총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가전 업황 부진, 중국 업체들의 공세까지 겹치며 실적이 흔들리자, 주주들의 시선도 한층 더 엄격해졌다.
같은 시기 열린 주총장 풍경은 업종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호황을 맞은 반도체 업계에는 기대와 낙관이 감돌았다. 불과 1년 전 '리더십을 복원하라'는 압박을 받았던 삼성전자는 올해엔 분위기가 반전됐다.
업황의 영향이 크겠지만, 주주들이 리더십과 비전을 외치는 건 단순히 환경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소니는 MP3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기존 사업이 흔들리자 최근 게임과 콘텐츠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반면 PC 시대를 주도했던 인텔은 전략 전환에 실패하며 AI 반도체 경쟁에서 존재감이 약화되고 있다. 재도약의 비결은 당장의 실적이 아니라, 다음 성장 동력을 얼마나 빠르고 적극적으로 현실화하느냐에 있다.
가전 산업은 이미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의 추격까지 겹치면서 단순한 점유율 경쟁만으로는 국내 가전업계가 프리미엄을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우리 업계의 신제품 출시 주기는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관계자들을 만나 중국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물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패배감 섞인 대답뿐이다.
LG전자는 가전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지주사 주총에서 구광모 LG 회장은 'AX(AI 전환)'를 강조하며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 AI와 로봇, 전장, 공조 등 신사업을 성장 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은 가전 의존도를 대체할 만큼의 규모와 수익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공조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당장의 수익 실현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주주들이 계속해서 회사에 '다음'을 묻는 이유다. 먹거리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단순히 'AI 열차'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실제 수익과 차별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시장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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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시장은 더 이상 과거의 성과를 보지 않는다. 다음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증명할 수 있는지가 기업의 가치를 좌우할 것이다. LG전자는 이미 과감한 결단으로 휴대폰 사업을 정리해본 경험이 있다. 먹거리가 될 만한 사업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비전과 그 분야에 얼마나 과감하게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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