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환의 '인구정책 대전환 700일의 기록'
저출생을 숫자가 아닌 생활 붕괴로 읽어낸 정책 기록
"출산율 반등보다 먼저 무너진 하루를 복구해야"

[이 책 어때]"울어도…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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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얘기만 나오면 한국 사회는 늘 그래프부터 꺼낸다. 0.72에서 0.75, 다시 0.80. 선은 조금 들렸는데 사람들의 하루는 아직 무겁다. 결혼을 미루는 청년 앞에는 비싼 집이 서 있고, 아이를 낳은 부모 앞에는 늦은 퇴근과 비어 있는 돌봄 시간이 놓여 있다. 주형환의 '인구정책 대전환 700일의 기록'은 그 선 밑을 본다. 반등한 수치를 말하면서도 자꾸 저녁으로 내려간다.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명, 2025년은 0.80명으로 올랐고, 정부는 2024년 6월 19일 일·가정양립, 양육, 주거를 세 축으로 내세운 대책을 발표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거창한 구호보다 먼저 생활의 낱말이 걸린다. 시간, 돌봄, 주거, 교육비. 정부 문건에서 수도 없이 본 말인데, 여기서는 표정이 다르다. 아이를 낳기 전에 사람을 먼저 겁먹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맞아도 버틸 자신을 잃어버린 쪽에 더 가깝다. 이 기록은 그 불편한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왜 안 낳느냐고 묻지 않는다. 낳으면 어디서부터 무너지는지 본다. 늦은 퇴근 하나가 저녁을 비우고, 저녁이 비면 돌봄이 흔들리고, 돌봄이 흔들리면 출산은 곧장 결심 바깥으로 밀려난다. 인구 위기라는 큰말이 여기서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갖는다.

문장이 살아나는 곳은 선언이 아니라 병목이다. 육아휴직 급여를 올리고, 2주 단위 육아휴직을 넣고, 대체인력 지원을 넓히고, 신생아 특례대출과 공급 구조를 손보는 대목에 이르면 어디가 막혀 있었는지가 또렷해진다. 저출생 대책이 없었던 적은 없다. 늘 있었고, 대개는 포스터 문구로 남았다. 낳아라, 키워라, 함께하자. 말은 가벼웠고 저녁은 무거웠다. 주형환이 붙든 것은 그 무게다. 정책은 결국 한 사람의 하루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대책에는 육아휴직 급여 최대 250만원 인상, 2주 단위 단기 육아휴직, 대체인력 지원 확대, 주거 지원 강화 같은 조치가 담겼다.

신생아의 발을 감싸 쥔 손. 출산율 반등보다 먼저 회복돼야 할 것은 아이를 맞아도 무너지지 않을 하루다.

신생아의 발을 감싸 쥔 손. 출산율 반등보다 먼저 회복돼야 할 것은 아이를 맞아도 무너지지 않을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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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등을 너무 빨리 축하하면 이 책의 가장 불편한 대목을 놓치게 된다. 저자가 과거 인터뷰에서 굳이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숫자는 올랐지만 제도를 쓰기 어려운 1인 영세자영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 저녁이 먼저 무너지는 맞벌이 가정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더 나아가 문제의 뿌리를 수도권 집중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짚었다. 집값과 사교육비, 긴 출퇴근과 경력 불안이 한 덩어리로 얽혀 있다는 뜻이다. 출산율은 맨 마지막 숫자일 뿐이다. 먼저 부서진 것은 사람들이 삶을 꾸려 가는 순서였다.


시야는 아이에서 멈추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에이지테크, 치매머니, 이민정책이 한 판에 올라온다. 적게 태어나고 오래 사는 사회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 질문은 그쪽으로 옮겨간다. 그 순간 이 기록은 출산율 반등의 자축문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다시 짜보려는 설계도로 읽힌다. 아이의 문제를 아이에게만 가두지 않고 노년의 노동과 돌봄,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외국인 유입과 정주까지 한꺼번에 꺼내 놓는다. 반등한 숫자에 취하지 않고, 그 숫자 뒤에 남아 있는 긴 청구서를 끝까지 본다.

물론 문장이 늘 날렵한 것은 아니다. 관료의 언어가 앞설 때도 있고, 성과를 정리하는 대목은 조금 반듯하다. 그런데 그 반듯함도 이 책의 성격을 감추지는 못한다. 기적을 자랑하는 대신, 너무 오래 미뤄 온 복구의 순서를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때문이다. 반등은 반갑다. 그래도 숫자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돌아왔다고 말하긴 이르다. 그래프는 올라가도 저녁은 여전히 무너질 수 있다.


끝내 남는 것은 출산율이 아니다. 저녁 여섯 시 이후가 텅 비는 집, 아이를 맡길 곳이 끊긴 동네, 집값과 교육비 앞에서 먼저 작아지는 마음이다. 나라가 먼저 잃은 것은 아이가 아니다. 아이를 맞아도 무너지지 않을 하루였다. 그 하루를 다시 세우지 못하면 반등은 통계표 안에서만 반짝인다. '인구정책 대전환 700일의 기록'은 승전보가 아니다. 늦게 시작된 복구 작업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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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정책 대전환 700일의 기록 | 주형환 지음 | 21세기북스 | 412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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