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인간의 온기마저 로봇에게 맡길 순 없잖아
때론 친구로 연인으로 보모로…
관계 빈자리 채우는 '소셜로봇'
맞춤형 위로, 때론 독이 될수도
지난달 인천에서 생후 20개월 된 여자아이가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마른 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엄마는 아이를 굶기고 학대했다. 아이의 손가락에는 배고픔을 버티지 못하고 빨아댔던 상처가 남아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MBC 고발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는 또 다른 비극을 마주한 아빠가 나왔다. 그는 자폐 1급인 스물일곱 살 아들을 20년 넘게 혼자 키우다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돌봄 시설에 전화를 돌렸지만 성인 자폐 1급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한쪽엔 아이에게 밥조차 주지 않은 엄마가 있고, 다른 쪽엔 죽어가면서도 아들 걱정뿐인 아빠가 있다. 착잡한 현실이 절박한 상상을 낳는다. 차라리, 차라리… 만약에 성능이 뛰어난 돌봄 로봇이 아이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밥은 줬을 것이다. 울면 달래줬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쓰러진 뒤에도 아들 곁을 지켰을 것이다.
첨단 기술이 불러올 문화·사회현상을 탐구하는 작가 이브 헤롤드가 쓴 '로봇, 그리고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같이 인간관계의 빈 곳을 채울 해결사로 떠오른 '소셜로봇'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로봇이 친구, 연인, 치료사, 보모, 교사 등 인간이 비운 자리를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어디쯤에서 로봇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길 것이라 예측한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감정을 흉내 낼 뿐인 로봇이지만 인간의 감정 이입은 의외로 자연스럽다. 미국 조지아 공대 연구팀이 로봇 청소기 '룸바' 사용자 379명을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이 청소 로봇에 성별을 부여하고, 그중 3분의 1은 로봇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미군에선 폭탄 제거 로봇 '마크봇'이 부서지자 군인들이 예포 21발을 쏘며 '동료'의 장례를 치렀다. 비교적 단순한 기계장치도 이런 대접을 받는데, 감정을 흉내내는 로봇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책에는 현재 시판 중인 소셜 로봇들이 대거 소개된다. 프랑스가 만든 90cm 키의 '페퍼'는 사람의 표정을 읽고 슬퍼 보이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준다. 돌봄 로봇 '아이팔'은 아이를 깨우고, 옷 입을 시간을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기까지 한다. 일본 요양시설의 새끼 물범 로봇 '파로'는 치매 노인의 불안을 가라앉힌다. 저자는 이런 기술이 자폐아의 의사소통을 돕고 고독한 노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한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경고를 늦추지 않는다. 돌봄 로봇이 확산될수록 사회는 인간에 의한 돌봄 비용을 줄이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짜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기계가 학습하는 인간 자신"이라고 말한다. 수백만 건의 대화를 학습한 AI는 인류가 만들어낸 콘텐츠의 총합이다. 편견과 혐오, 기만이 그 안에 녹아있다. 소시오패스가 공감을 연기하듯 AI도 공감을 연기한다. 맞춤형 위로를 끝없이 제공하는 AI로 인해 인간은 갈등과 타협을 수반하는 타인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할지 모른다. '예스맨' 육아로봇이 키운 아이들은 인간끼리의 소통에 서투르고, 어쩌면 타인을 로봇처럼 괴롭히고 학대해도 아무 말 못하는 '비인간적' 존재로 여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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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갓난아기의 부모들이 간밤에 채팅 로봇 '챗GPT'를 켜고 갑작스러운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낫게 할 방법을 묻는다. 로봇에게 의지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아파서 눈만 깜박이는 아이를 들여다보며 밤을 새는 부모의 심정까지 로봇이 대신 하게 할 수는 없다. 로봇이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사이의 선, 그 선은 결국 우리가 그어야 한다.
로봇, 그리고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 | 이브 헤롤드 지음 | 김창규 옮김 | 현암사 | 292쪽 |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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