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BTS 광화문 공연에 '아리랑'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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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컴백 공연을 열었다. 신보와 공연 제목은 '아리랑'. 소속사 하이브는 '뿌리로의 회귀'를 내세웠고, 넷플릭스는 이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24시간 만에 1840만명이 시청했다. 숫자는 화려하다. 그러나 그 이면은 초라하다.


이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비용은 시민의 몫이었다. 경찰과 서울시 인력 등 1만5500명이 투입됐고, 공권력은 30시간 넘게 도심을 통제했다. 지하철은 멈추지 않았고, 시민들은 검문을 거쳐야 했다. 반면 하이브가 낸 공간 사용료는 9000만원 수준이다. 공공의 광장을 내어주고 시민의 일상을 제한한 대가치고는 터무니없이 가볍다. 정부는 사실상 기업의 상업 공연을 위해 공적 자산을 동원한 셈이다.

현장조차 기대와 달랐다. 26만명 운집을 예상했지만 실제 광화문광장 인원은 4만8000명에 그쳤다. 과잉 통제와 과잉 동원이 낳은 '비어 있는 광장'은 이 프로젝트의 민낯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넷플릭스의 연출이다. 광화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시민의 기억과 정치적 상징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그러나 넷플릭스 카메라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휑한 광장 전경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무대의 열기와 관객의 호흡을 끊었다. 살아 있는 공간을 '드론 샷용 배경'으로 소비한 것이다.

자막 처리 역시 기본조차 지키지 못했다. 타이밍은 어긋났고,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가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BTS 공연에서 자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 필수를 놓쳤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준비 부족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연출 역량이다.


하지만 이 공연의 핵심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아리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리랑을 내세웠다면,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연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아리랑은 들리지 않았다. 첫 곡 후반부에 잠깐 스쳐 지나간 샘플링과 잠시 등장한 국악단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공연의 맥락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밝힌 "글로벌 타깃" 전략은 이 무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12곡 중 9곡이 영어 곡이었다. 가사와 정서는 철저히 미국 시장을 향했다. 그렇다면 아리랑은 무엇이었나. 한국적 정체성을 빌려온 마케팅 표어였을 뿐이다.


광화문이라는 공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소비됐다. 장소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지워지고 '한국적인 배경'이라는 외피만 남았다. 내용은 비어 있고, 외형만 차용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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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공공 공간을 내어줬고, 하이브는 상업적 성과를 챙겼으며, 넷플릭스는 글로벌 콘텐츠를 확보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아리랑은 없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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