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 반감 크고 EU '다크 패턴' 규제 촘촘해
기존 단일 수익 모델 한계 노출
오프라인 소장 욕구 자극하는 '출판 만화' 부상

프랑스 어메이징 페스티벌에 진출한 네이버웹툰.

프랑스 어메이징 페스티벌에 진출한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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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8억3700만 유로(약 1조4530억원) 규모의 만화 시장을 형성한 유럽 최대 소비국이다. 거대한 시장 규모가 아시아 플랫폼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특히 한국식 웹툰 유료화 모델의 핵심인 '기다리면 무료(기다무)' 시스템은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2021년 진출한 카카오픽코마가 3년 만에 유럽 법인 해산을 결정하고 서비스를 종료했을 정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달 26일 발간한 보고서 '프랑스 콘텐츠 산업 동향'에 따르면, 실패의 기저에는 '방드 데시네(BD)'로 대표되는 프랑스 특유의 만화 소비문화가 있다. 현지 독자들에게 만화는 한 번 읽고 버리는 소비재가 아니다. 보관과 재독을 전제로 한 소장용 출판물이다. 한국 플랫폼 특유의 회차 단위 열람이나 기간 제한 접근이 가치가 축적되지 않는 '대여'로 인식돼 결제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위적 기다림에 대한 심리적 반감도 있다. 현지인들은 대기 시간을 보상이 아닌 독서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제약으로 규정한다. 문화 매체 텔레라마는 기다무 방식을 독자의 조급함을 자극하는 메커니즘으로 정의하며 "잦은 결제 유도가 피로감을 높여 콘텐츠 소비를 중단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적 규제도 문화적 차이만큼이나 견고한 장벽이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과 프랑스 소비자보호법은 이용자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상업적 사용자 환경(UI) 설계, 이른바 '다크 패턴'을 엄격히 금지한다. 기다무 모델의 시간 압박과 가상 화폐 충전 유도는 현지 규제 당국의 시선에서 불투명한 기만적 설계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프랑스 웹툰 작가들이 어메이징 페스티벌의 네이버웹툰 부스에서 사인회에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 웹툰 작가들이 어메이징 페스티벌의 네이버웹툰 부스에서 사인회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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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또한 수시로 코인 가치가 요동치는 웹툰의 가격 정책과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여기에 유럽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의 강화로 이용자 행동 데이터를 결합한 표적 마케팅마저 제동이 걸려, 체류 시간 극대화를 노리는 기존 전략을 펴기가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이 꺼내든 해법은 오프라인 출판과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이다. 모바일 결제의 벽을 출판 시장의 저력으로 뚫어내는 우회 전술로, 애플리케이션으로 웹툰을 무료로 공개해 소장 욕구를 자극한 뒤 종이책 단행본 구매를 유도한다.


파급력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2019년 네 권에 불과했던 프랑스 내 웹툰 원작 단행본 출간 종수는 2024년 255권으로 예순네 배 늘었다. 현지 출판사를 통해 2021년 출간된 '나 혼자만 레벨업'의 경우 지난해 8월까지 누적 판매고 250만 부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잠재력을 입증했다.


프랑스 웹툰 시장에서 점유율 70% 이상을 장악한 네이버웹툰은 이 전략의 최전선에 서 있다. 미셸 라퐁 등 굵직한 현지 출판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기 지식재산권(IP)을 서점에 유통한다. 오프라인 출판 수익으로 디지털 기반의 매출 한계를 상쇄한다. 온라인 플랫폼의 운영 방식도 현지 문화에 맞춰 영리하게 뜯어고쳤다. 기다무 모델을 강요하는 대신, 완결작 중심의 '매일 무료 열람(데일리 패스)'을 보조적인 접근 완화 장치로만 운용해 인위적 기다림에 대한 거부감을 대폭 줄였다.


네이버웹툰 프랑스 홈페이지.

네이버웹툰 프랑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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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 자생적인 현지 IP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낸다. 프랑스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연재하는 '창작 게시판(캔버스)'에 투자해 독점 계약 작가 마흔 명 이상을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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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콘진원 프랑스비즈니스센터장은 "프랑스는 만화를 '제9의 예술'로 우대하며 자국 문화 보호 논리를 강력하게 작동하는 나라"라며 "디지털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기존 시장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출판 인프라와 로컬 창작자를 아우르는 유연한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이 유럽 시장 제패의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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