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60일 전 전입 시 어떤 지역이든 출마
잠시 스친 지역, 고향이라 내세우는 용병들
중앙서 온 '힘센' 외지인 환영하는 지역민들
무늬만 지방자치…한국 '후진성'의 상징

'동네사람' 중 대표 뽑아야 정치개혁 가능
중앙 개입 없는 공천권 상향식 변화 시급

만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지역이든 선거일 60일 전에만 주민등록이 돼 있으면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지방선거에 지역 인사가 출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테니, 공직선거법은 굳이 이런 자격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일 전 60일' 이란 요건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후진성'과 '중앙 종속성'의 상징이 됐다. 선거가 임박해 외지인이 나타나 인사하는 풍경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거물급 정치인의 무연고 광역지자체 출마도 '비정상이 정상이 된 결과'다.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모의 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모의 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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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은 미국 민주주의의 요체로 일컬어진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뉴잉글랜드 지역주민들이 지역문제를 토론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소개하며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했다. 함께 궁리하는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타협하며 양보한다. 그 속에선 공존의 의사결정 기술도 배운다. 무엇보다 동네 대표를 키워 차츰 전국구 대표로 성장시키는 성숙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무릇 대표가 되려면 자기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성과와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지역에 특별한 활동도 없다가 선거 때 갑자기 나타난 외지인을 '카펫배거(carpetbagger)'라 부른다. 대표를 구걸한다는 경멸을 담은 말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다르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인사들 면면을 보면 과연 동네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고향이라 내세우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딴 동네에서 보낸 사람도 많다. 청와대 근무, 중앙정부 고위 관료, 언론에 일상으로 오르내리는 유명세,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실력자임을 내세운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예산도 화끈하게 받아올 것 같고 동네를 확실히 발전시켜 줄 것도 같다. 이렇게 다른 동네 외지인에 우리 동네 경영을 민주적(?)으로 맡긴다. 선거 때면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이렇게 용병을 수급하고, 용병끼리 경쟁을 하는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에는 양당제의 사실상 정치독점이 오래되면서 이런 지방선거의 중앙 종속성을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동네가 잘되려면 힘센 정치인이 낫다는 거다. 1992년부터, 근 35년간 지방선거를 하면서도 지방자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건 이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없어야 할 텃세는 있고, 있어야 할 줏대는 없어서다. 어느 지역이나 우리 동네만 우선하는 조례가 천지다. 이런 울트라급 텃세 속에 230개 지방자치단체는 텃세와 기득권을 거래하고 정치시장 표몰이에도 이용된다. 이것을 잘하려면 소위 힘센 정치인이 유리하다. 그래서 줏대 없게도 동네 사람보다 갑자기 등장한 외지인을 높이 친다.

지방자치 30년에도 지역의 권한은 거의 없는 현실도 여기에 한몫했다. 중앙정부 재정 종속성이 압도적이고, 조례가 있다고 하지만 정작 차별적이고 실효적인 제도 구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광역지방자치단체조차 중앙정부 위임사무가 상당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간간이 자치 사무를 셀 수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지방자치는 정치시장에 그럴듯한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스스로 결정할 게 거의 없는 지방자치에선 타운홀 미팅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제3차 상무위원회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연, 추미애, 한준호 후보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제3차 상무위원회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연, 추미애, 한준호 후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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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 후보자 공정경선 협약식에서 후보자들이 공정경선을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 후보자 공정경선 협약식에서 후보자들이 공정경선을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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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는 기득권 중앙정치 때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공천헌금 사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자기 지역 공천에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역설적으로 지역 정치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있는 이들은 국회의원 출마 시 지역 거주 자격조건도 없다. 만 18세만 넘으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구에서도 공천받을 수 있다.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동네와 무관한 사람들이 장기판 말처럼 활용돼 이기기 위한 대진표를 만들고 그것을 흥미롭게 중계하는 언론을 보는 사람들은 재밌어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동네와 무관한 어쩌다 동네 사람이 지역의 일꾼을 뽑는다는 지방선거 공천 권한을 휘두른 것을 풀뿌리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그 결과, 우리나라 지방정치는 이상한 인센티브가 작동한다. 지방자치란 멋진 말로 지방자치단체를 200개 넘게 구획 짓고 단체장, 지방의원 자리를 만들면 그만큼의 정치적 자리가 생겨난다. 소위 높은 사람을 선호하는 지역정서에 기대 중앙정치 기득권자를 공천해 줘서 내려보낸다. 경력관리도 쉽다. 정권이라도 잡으면 청와대, 공공기관의 수많은 자리를 아주 잠깐의 기간만 허용하면 금방 그럴듯한 경력이 생긴다. 진정한 자치를 하려면 상향식 공천을 제도화하고 중앙당은 발을 빼야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지방정부에 조세와 재정, 규제 권한도 확실하게 이양해야겠지만 이 역시도 기약이 없다. 겉으론 지방자치를 내세우지만 지방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서는 안 되고, 우리 편을 많이 만드는 정치 게임에 불확실성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 지방을 더욱 움켜쥐려 한다.


한국 정치 실패의 뿌리는 여기에 있다. 타운홀에서 민주주의 학교 교육을 체화하지 못하고 정쟁과 정략을 정치인인 양 배운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 지역이란 확실한 뒷배를 두고 정치를 하면 이런저런 현안에 자기 목소리도 확실히 내겠지만, 대표 또는 중앙당이 공천권을 휘두르는 마당에 '입꾹닫(입을 꾹 닫는)' 정치가 횡행한다. 정치의 기본이 돼야 할 지역으로부터의, 주민으로부터의 생활에서 단절된 정치로는 대화와 타협은 없고 우리 편의 '이기기 감정정치'가 우선전략이 된다. 민주주의가 선진화한 미국이나 영국과도 대조적이다. 미국과 영국은 지역주민, 지역당원의 권한이 확실하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명확하다. 용병정치를 막으려면 공천권의 완전한 상향식 변화가 시급하다. 중앙정치가 일절 개입하면 안 된다. 지방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지역에서 주민들이, 지역당원들이 선출한 인사들이 공천돼야 한다. 선거 두세 달 전 갑자기 우리 동네 주민이 된 이를 우리 동네 대표로 뽑아주는 이상한 지방자치도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됐다. 지역 선거구는 아무리 작아도 수만 명이나 된다. 수만 명 중 우리 대표를 하나 선출하지 못하는 구조과 습속을 두고 무늬만 지방자치를 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늘 요원할 테다. 그래서 한번 보자. 이번엔 우리 지역 선거에 진짜 우리 동네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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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우의 프레임 너머]'용병정치', 그 레드카펫을 걷어라 원본보기 아이콘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좋은규제시민포럼 규제모니터링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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