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
전통의 익살과 어둠으로 오늘의 시각을 건드리다

손가락은 사라지고 눈알이 남았다. 박찬경의 '안구선사' 앞에 서면 선문답도 조금 다르게 들린다. 깨침보다 먼저 피로가 오고, 숭고보다 먼저 익살이 비친다. 손 위에 얹힌 눈, 안으로 꺼진 구멍, 제 눈으로 제 몸을 다시 들여다보는 듯한 장면들. 국제갤러리 K1에서 진행 중인 이번 개인전은 그렇게 시작한다.

박찬경, '안구선사', 2025, Oil on canvas, 139.5 x 203 cm. ⓒ안천호. 사진 국제갤러리

박찬경, '안구선사', 2025, Oil on canvas, 139.5 x 203 cm. ⓒ안천호. 사진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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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이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9년 만이다. 그동안 사진과 영상, 설치로 더 익숙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회화를 앞세웠다. 다만 새 매체를 시도한 쪽보다, 오래 붙들고 있던 생각이 비로소 화면 위로 올라온 쪽에 가깝다. 사찰 벽화와 민화, 불교 설화와 만화의 칸, 산수화의 기운과 약간 우스운 과장이 한 화면 안에서 뒤엉킨다. 잘 정리된 전통이라기보다, 이름 없는 손들이 오래 덧칠하고 흉내 내며 남긴 그림의 버릇 같은 것이 먼저 보인다.


표제작 '안구선사'는 구지선사의 선문답을 비튼 그림이다. 손가락 하나를 세워 깨우침을 주던 이야기는 여기서 눈으로 바뀐다. 박찬경은 시각예술가가 선문답의 수수께끼를 다룬다면 손가락보다 눈이 맞겠다고 했다. 그 한 번의 치환으로 옛이야기는 갑자기 오늘의 피로와 붙는다. 눈은 이제 진리를 보는 기관이기보다 먼저 혹사당한 기관처럼 보인다. 너무 오래 화면을 본 사람의 눈, 무언가를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끝없이 반사된 이미지를 들여다본 사람의 눈이다.

박찬경, '고란사', 2024, Oil on canvas, 70 x 70 cm (3 panels). ⓒ안천호. 사진 국제갤러리

박찬경, '고란사', 2024, Oil on canvas, 70 x 70 cm (3 panels). ⓒ안천호. 사진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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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션' 연작에 가면 그 감각은 더 노골적이다. 눈알을 눌러 무언가를 보는 형상, 민화 같고 만화 같은 칸, 아크릴 특유의 번들거림. 웃기는데 오래 보면 조금 서늘해진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다 보면 눈만 따로 떨어져 나가 중노동을 하는 것 같다는 작가의 말도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불타는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타는 장면의 이미지를 계속 보는 시대다. 그림 속 눈은 그래서 우스꽝스럽고, 조금 측은하다.

눈알의 중노동, 돌의 헛수고

이번 전시가 붙드는 것은 그런 피로만이 아니다. '헛수고' 연작에서는 돌 하나를 그리고 날짜 하나를 적는다. 매일은 아니지만 틈이 날 때마다 하나씩 쌓은 그림들이다. 제목은 '헛수고'다. 돌을 쌓는 일도, 그 돌을 다시 그림으로 쌓는 일도 쓸모만 따지면 헛일에 가깝다. 그런데 그 쓸모없음이 이 연작에서는 이상하게 가볍지 않다. 기도 같고, 다짐 같고, 혼자 견디는 시간의 기록처럼 보인다. 빠르게 지나가야 값이 생기는 세상에서 이런 그림은 조금 느리고, 조금 고집스럽다.

박찬경 작가가 국제갤러리 K1에서 열린 개인전 '안구선사' 출품작 앞에 섰다. 9년 만의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그는 사찰 벽화와 민화, 불교 설화의 이미지를 회화로 다시 불러냈다. 사진 국제갤러리

박찬경 작가가 국제갤러리 K1에서 열린 개인전 '안구선사' 출품작 앞에 섰다. 9년 만의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그는 사찰 벽화와 민화, 불교 설화의 이미지를 회화로 다시 불러냈다. 사진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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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이 안다'에 이르면 화면은 더 검어진다. 서구 철학에서 동굴은 대개 무지의 비유였지만, 박찬경의 동굴은 그 반대편에 선다. 어둡고 기기묘묘한 공간이 오히려 더 오래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을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결핍이 아니라 저장처럼 느껴진다. '혜통선사'와 '백양사' '고란사' '족자' 연작도 다르지 않다. 머리 위 화로, 기이한 부속물, 캔버스 안으로 밀려 들어온 족자의 형식. 경건함만 남긴 그림이 아니라 익살과 과장, 약간의 자학과 농담이 함께 남은 그림들이다. 작가가 이를 '선불교 그로테스크 SF'라 부른 것은 농담이면서도 거의 정확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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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의 회화는 전통을 복원하지 않는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 낯선데 이상하게 오래 본 것 같은 것을 다시 앞으로 데려온다. 그래서 '안구선사'의 화면들은 보자마자 이해되는 대신 자꾸만 뒤늦게 따라온다. 눈이 먼저 지치고, 그림은 그다음에 천천히 온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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