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이중구조 타개
하청노동자 교섭력 제고
정규직, 양보하는 자세 필요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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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된 지 열흘이 지났다. 시행 후 9일간 287개 원청사업장에서 교섭요구가 있었고 10여개소에서 교섭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섭 쓰나미'가 아닌, 조용한 출발만 목격된다. 물론 현장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교섭의 향배와 파장에 대해서 이야기가 들린다. 노란봉투법은 '조장된 파업'으로 전국의 기업현장을 황폐화시킬 것인가. 노란봉투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부터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원·하청 구조는 자연발생적 시장 질서가 아닌 1987년 이후 형성된 노동 체제의 역사적 산물이다. 원청 정규직의 임금이 교섭력을 매개로 올라갈 때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공정을 쪼개 하청화를 진행했다. 조선소에서 함께 용접 불꽃을 튀기면서도 하청 노동자는 원청 임금의 60%를 받고 있다. 원청의 공정 일정에 맞춰 야간작업과 휴일근로를 소화하면서도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테이블에는 앉을 수 없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 정규직 채용의 축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으로 드러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한국경제의 병목인 건 분명하다. 정규직 노조가 하청의 광범위한 활용에 묵인하거나 암묵적으로 담합했다는 비판과 증거가 있다. 분명 일정 수준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수익성 악화나 불황으로 인한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하청 생산방식의 최대 수혜자가 비용을 절감한 원청 제조 대기업인 것도 사실이다.


상당수 연구자들과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교착을 타개하려면 분명 정규직 노조의 참여와 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섭 테이블 바깥에 서 있던 하청 노동자에게 "정규직이 먼저 양보할 때까지 기다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원청의 책임을 우회하는 데 활용될 뿐이다. 하청노동자의 교섭력을 높이는 일과 정규직의 양보는 별개의 채널을 잘 설계하고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과제다. 후자는 업종별 대화의 틀 안에서 풀어야지, 하청 교섭의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이 떠난다"는 경고도 좀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제조대기업의 해외 진출은 노란봉투법 이전부터 진행된 글로벌 전략이다. 조선소나 자동차 공장의 로봇 도입, 디지털 트윈 적용 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0년 전에도 한국의 자동화율과 로봇 도입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응으로 보는 것은 선후관계가 맞지 않다. 노란봉투법에 따라 하청노조가 교섭을 요구해도 의제별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따지고, 전체 하청노조 간 창구단일화를 거쳐야 교섭 테이블이 열린다. 무분별한 교섭 남용은 분명히 걸러지게끔 기본적인 설계가 되어 있다.


법 시행 초기에 노사 모두 극단적 전략-노동계의 과잉 요구든, 경영계의 전면 거부든-으로 선례를 오염시키면 그 비용은 결국 교섭력이 가장 약한 하청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조장된 '공포'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선례가 중요하다.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어떤 수준에서 자리 잡는지, 교섭단위 분리가 현장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지, 교섭 과정에서 성실교섭 원칙이 양쪽 모두에게 관철되는지에 따라 이 법의 성패가 갈린다. 노란봉투법 시행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새로운 교섭의 시작이다. 신중하되 회피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첫 단추를 잘 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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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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