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받으면 3000만원 줄게" 그후…모르쇠 늘자 '고액 선불' 고집하는 변호사들[성공보수 금지의 역습]①
관행 된 착수금 올려 받기
가난한 의뢰인에게는 부담
성공보수 명목 계약 암묵적 진행
"무죄 결과 얻고도 대가 미지급
신의성실원칙위반" 1월 판결 술렁
2015년 대법 전합 판결과 배치
보수 무효 판결 이후 승소율 감소
변호사 변론 동기 약화 지적도
"무죄 나오면 3300만원 드릴게요."
의뢰인 A씨는 항소심을 앞두고 한 로펌과 이렇게 약속했다. 그는 며느리의 불륜 증거를 잡기 위해 심부름센터를 동원해 몰래 찍고 촬영물을 직장에까지 보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결국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로펌과의 계약이 또 다른 쟁점이 됐다.
그는 변호인에게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무효'라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이유로 약정한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로펌은 A씨에게 '보수 청구소송'을 걸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3부(부장판사 최성수)는 "성공보수 약정 자체는 무효이지만, 무죄라는 결과를 얻고도 대가를 전혀 지급하지 않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법무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사사건 성공보수를 무효로 본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배치되는 하급심 판결이 지난 1월 나오면서 법조계가 술렁이고 있다. 2015년 대법은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 약정을 전면 무효로 하는 판결을 했다.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 약정은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하고 사법 불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A씨처럼 '무죄를 받으면 성공보수를 더 얹어드리겠다'는 명목의 계약을 암묵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변호인이 성공보수를 받으면 더 열심히 변론에 임해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계약해놓고 A씨 사례처럼 '나 몰라라' 식으로 보수를 주지 않아 법정 다툼까지 가는 사례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와 실제 송무 현장의 괴리가 큰 이유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파악한 관련 보수청구 소송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15건에 이른다.
이런 사례가 빈발하자 변호사들이 성공보수를 못 받을 바엔 착수금을 올려받으려는 관행이 확산하고 있다. 경제력이 부족한 의뢰인들은 높아진 착수금 때문에 형사사건에 법적 대응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구속 기로에 섰던 일용직 근로자 정모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선임 비용으로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1500만원을 착수금으로 지불했다. 정씨가 구치소에 수감된 사이 남겨진 가족들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씨를 대리한 변호사는 "예전 같으면 착수금 500만원만 받고도 사건을 맡을 수 있었고, 의뢰인은 남은 1000만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다가 훗날 석방돼 경제 활동을 재개했을 때 성공보수를 지불하면 됐다"면서 "결과와 상관없이 거액을 선불로 내야 하는 지금의 구조는 가난한 의뢰인에게 치명적"이라고 했다.
변호사의 방어력과 변론 동기가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리걸테크 서비스 '엘박스'와 판결문 약 15만건을 분석한 결과, 형사 성공보수 무효 판결 이후 동일한 변호사가 형사사건을 맡았을 때 민사사건 대비 승소율이 6.2%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 유형 사건을 변호하는 경우 승소율이 1.9%포인트 더 떨어졌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과 같이 체계적인 소송 보험 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 실정에서는 성공보수가 가졌던 사회보험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며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성공보수의 상한선 설정이나 부당 수령 규제 등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조순열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대법 판결이 사실상 의뢰인의 기망 행위를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번 항소심 판결은 사법 정의와 시장의 상식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성공보수 도입에 대한 반론도 있다. 형사 성공보수가 있으면 승소를 위해 증거를 조작하거나 판사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등 사법 정의를 훼손하려는 유혹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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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변호사 단체는 변호사 수의 급격한 증가가 시장의 자정 작용을 유도해 과거 대법원이 우려했던 부작용을 상쇄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대법원 판결 당시 2만명이었던 변호사 수는 현재 4만명대다. 정보 비대칭이 다소 해소되고 무한 경쟁이 시작된 만큼, 의뢰인이 적정 가격을 비교 선택할 수 있는 자정 작용이 가능해졌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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