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선거운동 막바지, '72시간 유세'를 선택한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가 있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사흘 동안 밤잠을 잊은 강행군이었다. 버스 정류장과 공원, 지하철역과 골목 곳곳을 누비며 유권자를 만났다.
이미 판세는 기울어 있었다. 당시 지방선거는 수도권에서 특정 정당 후보들이 사실상 싹쓸이 패배를 당할 정도로 민심의 쏠림이 극심했다. 후보 개인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휩쓸림의 탁류'를 버텨낼 수 없었다. 72시간 유세를 선택한 후보 역시 1위 후보와 더블 스코어 이상의 격차로 완패했다.
결과가 선거의 모든 것은 아니다. 녹초가 된 채 선거 마지막까지 뛰는 후보의 모습은 정가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그런 게 바로 남는 선거다. 당시 72시간 유세를 실천한 후보의 핵심 참모와 나눴던 대화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잘 지는 것도 중요하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어떤 글보다 진한 여운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정치는 점과 점을 연결해 선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 가치를 증명해 가는 과정이다. 선거의 득표율이라는 숫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을 축적할 줄 알아야 한다. 72시간 유세의 그 주인공은 어떻게 됐을까. 19년이 흐른 뒤 그는 정치 중앙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대선 승리에 힘을 보탰다. 세월은 흘렀어도, 그의 가치는 여전히 존중받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오는 6월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기대감을 안겨주는 정치인이 추가될까. 정당 내부 경선이 한창인 가운데,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기대보다는 실망에 가깝다. 공천을 따내려는 열망을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열정과 욕심은 구별해야 한다. 설익은 의혹을 앞세워 폭로전에 뛰어드는 모습은 소탐대실의 덫에 빠져 정치생명을 갉아 먹는 행동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정치인일수록 그런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자기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선을 앞두고 계파 정치에 기대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당장 표를 확보하기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정치에 공짜는 없다. 계파에 기대는 모습이 반복될수록 참신성은 희석된다. 결국 정치 메커니즘의 부속품이 되고 만다. 특정 계파 이해 요구에 앞장서는 정치인에게 유권자가 매력을 느낄지도 의문이다. 당내 경선에서 설사 승리하더라도, 그의 정치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자기 매력을 제대로 꽃 피우기도 전에 스러질 운명이다.
그래서 선거에서는 잘 지는 게 중요하다. 출사표를 던진 이유를, 자기가 꿈꾸는 정치의 밑그림을 제대로 알려야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허무맹랑한 정책을 내놓으며 관심받으려 하거나, 포퓰리즘 우려가 있는 정책을 내놓으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잠시 시선을 모을 뿐, 유권자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는 정치인이 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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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본선에 나설 후보자들도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역대 지방선거는 쏠림 투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역량이 충분한 후보도 유권자 선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비록 승리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정치 효능감에 대한 기대는 남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는 기회를 주고 싶은 인물로 기억된다. 그런 게 바로 남는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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