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로 못 배우는 현장 암묵지
후대 전수 없이 끊길 판국
인력난 넘어 품질·안전 위기로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주상복합건물 건설 현장. 이날 출근한 작업자 48명 중 20대와 30대는 각 1명뿐이었다. 60대 이상은 25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50대(15명)를 합치면 그 비중은 83%였다. 서초구 아파트 건설 현장의 인부 2000여명 중 20~30대 비율은 5% 안팎이다. 이 현장에서 만난 내부 마감 공사 경력 35년 차 현장반장 A씨는 "노하우를 물려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아파트 건설현장. 김현민 기자

경기도 한 아파트 건설현장.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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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자재 품질 파악 '노하우' 사라질 판

현장에서 말하는 '손끝 기술'은 교재에 적힌 대로만 따라해서는 익힐 수 없는 경험의 영역이다. 아파트 벽과 바닥을 매끈하게 마감하는 미장에서는 같은 시멘트를 써도 모래 입자와 수분이 현장마다 달라 이론대로 배합하면 품질이 안 나온다. 숙련공은 손으로 재료를 만져본 뒤 배합을 바꾸고 반죽을 폈을 때 기포가 생기지 않는 상태를 감각으로 찾아낸다.

조적(벽돌 쌓기)도 벽이 높아질수록 아래쪽 시멘트가 눌린다는 점을 미리 감안해 벽돌 사이 틈을 눈대중으로 조금씩 달리 잡아야 마지막까지 줄이 반듯하게 맞는다.

서울 한 아파트 건설 현장. 김현민 기자

서울 한 아파트 건설 현장.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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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시공은 3~5m 높이 벽면에 2~3㎜ 간격을 끝까지 똑같이 맞춰 붙여야 하는데, 조금만 어긋나도 타일이 맞물리거나 벌어져 다시 뜯고 붙여야 한다. 이는 직업 훈련이나 학원 교육만으로는 습득하기 어렵다. 실습장에서는 20㎝x20㎝ 크기의 소형 타일로 연습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60㎝x120㎝ 규격의 무겁고 큰 타일도 쓰여 초보자들이 다루기 어렵다.


건물 뼈대를 만드는 형틀목공의 경우 숙련공은 도면을 보고 나중에 타일이 붙을지, 돌이 붙을지까지 계산해 벽 두께와 문틀 자리, 창호 위치를 미리 맞춘다.

"이 손끝에 35년 건설 노하우 있는데…물려줄 사람이 없다"[손끝기술의 위기]① 원본보기 아이콘

지방 건설 현장에서 인력관리를 맡고 있는 한남일 세우건업 이사는 "60~70대 베테랑들이 점차 현장을 떠나는 상황에서 노하우를 이어받을 젊은 세대가 없어 수십년 쌓은 기술이 그대로 끊길 판"이라고 했다.


건설 현장의 손끝 기술의 위기는 신규 진입하는 젊은 인력 유입 현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 인부 평균 연령은 51.7세로 전체 산업 평균(48.0세)보다 높았다. 건설 기능인력 10명 중 8명 이상(83.2%)이 40대 이상이었고, 30대와 20대 이하는 합쳐도 17%가 채 안 됐다.


서울 중랑구의 한 인력사무소 대표는 "예전에는 일당이 세니까 힘들어도 왔지만, 지금은 배달이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비슷하게 벌 수 있어 젊은이들은 아예 안 온다"며 "요즘은 50~60대가 주축이고 40대면 막내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이 손끝에 35년 건설 노하우 있는데…물려줄 사람이 없다"[손끝기술의 위기]① 원본보기 아이콘

인맥 없으면 일감도 불안

청년층이 건설업을 기피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만이 아니다. 공사가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내려가면서 노무비가 줄어든다. 일감이 없어 쉬는 날(소위 '데마')이 잦아 안정적인 소득도 기대하기 어렵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성장할 수 있다는 직업적 비전을 찾기 힘들다. 공개채용도 없어 일자리는 인력사무소나 네이버 밴드, 인맥을 통해서만 돈다.


김용학 한국기능장연합회 이사장은 "어느 현장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알 길이 없어 접근 기회 자체가 막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사회적 인식까지 겹치면서 청년층이 장기적인 직업으로 선택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어렵게 들어와도 숙련공으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인맥 중심 구조 탓에 지속해서 일감을 받기 어렵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부족하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다른 업종으로 옮긴 B씨(38)는 "기술을 가르쳐주면 자기 밥그릇을 빼앗긴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숙련 전수 자체도 문제지만 전수받을 체계도 미비하다는 얘기다.


AI 시대에도 건설은 결국 '사람'

숙련공 고령화와 청년 유입 절벽은 단순한 인력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품질과 안전과도 직결된다. 건설현장은 날씨, 자재 상태, 공정 간 간섭 등 변수가 많아 도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오차와 돌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를 현장에서 바로잡는 것은 결국 숙련공의 판단과 손기술이다.


베테랑이 빠져나가고 이를 이어받을 청년층도 줄면서 부실시공을 걸러내고 공정 완성도를 높이는 숙련의 축적이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고하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근로자 고령화는 단순한 인력 변화가 아니라 산업 전반 생산성 저하와 안전 리스크 증가로 이어지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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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자동화 로봇이 인력난과 품질 저하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건설현장만큼은 사람의 판단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도이체방크 연구소는 예측 불가능한 물리적 환경에서 손기술이 필요한 건설 현장은 디지털화가 가장 어려운 영역으로 꼽았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AI가 대체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숙련공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장비와 공정"이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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