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가 만들었는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 사용을 결정한 사람을 기억할 뿐이다."
영화 '오펜하이머' 속 한 장면. 핵폭탄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 오펜하이머가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며 자책하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냉소적으로 응수한다.
역사는 과학자의 고뇌보다 그 성과물을 어디에 휘두를지 결정한 통치자의 결단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무기를 만든 죄책감에 번민하는 과학자를 '징징거리는 자'라 일갈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기술의 주도권이 결국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은 인간의 욕망이 선택한 결과지만, 그 비극을 현실로 구현하는 도구는 언제나 기술이었다.
최근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기술이 빚어낸 살벌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정밀 유도무기부터 위성 정보,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시스템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중동에서는 드론과 AI가 결합된 전쟁이 진행되며, 기술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형 자폭 드론이 저고도로 침투해 표적을 타격하고, 위성 정보와 AI 기반 분석 시스템이 공격 대상을 실시간으로 선별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민간인 피해까지 빠르게 확산되며 전쟁의 속도와 파괴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기술은 생명을 구하는 '방패'가 되기도 하지만, 가장 효율적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창'이 되기도 한다.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휘두르는 인간의 '선택'에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이를 두고 "과학 기술의 진보는 마치 병적인 범죄자의 손에 든 도끼와 같다"고 경고했다. 과학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기술이며,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는 인간이 결정한다는 통찰이다.
AI 연구의 선구자 제프리 힌턴 역시 "악의적인 사람들이 AI를 사용하는 것을 막기는 매우 어렵다"며, 기술의 결함이 아닌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편향된 AI 글쓰기 도구가 이용자의 문체뿐 아니라 사회 이슈에 대한 태도까지 교묘하게 이동시키며, 이용자 대부분이 이러한 영향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경종을 울렸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은 창조주를 향해 "나는 당신의 아담이었어야 했지만, 타락한 천사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과학이 만들어낸 가능성이 기술을 통해 현실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오래된 경고다.
시간이 흐르면 과학의 이름은 이론과 발견으로 남고, 기술의 이름은 제품과 무기로 남는다. 그러나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결정이다. 결국 역사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을 기록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는 사회적 기준이다. 어떤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윤리와 정책, 법의 기준이 함께 세워져야 한다. 기술이 앞서 나가고 사회가 뒤따르는 구조가 지속될 때, 그 격차는 언제든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일 보도되는 폭격 영상에 무감각해지지 말아야 한다. 그 비극의 이면에는 기술의 사용을 결정한 인간의 선택이 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윤리적 결단과 제도적 합의는 단순히 현재의 혼란을 막는 방패를 넘어, 미래 세대가 기술을 축복으로 누릴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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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가능성을 만든다. 기술은 현실을 만든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인간이 정한다. 과학은 결국, 그 사회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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