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권력이 만든 '랜드파워'
부동산 불패 신화의 현주소

배우 박해수는 2024년 LG아트센터가 기획한 연극 '벚꽃동산'에 출연하며 로파힌 역에 대한 오랜 로망을 실현했다. 그는 "내가 샀습니다! 내가 샀어요! 벚꽃동산은 이제 내 겁니다!"라는 대사를 꼭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1861년 러시아의 농노 해방 이후를 다룬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에서 머슴이 주인의 땅과 집을 매입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로파힌의 집안은 대대로 라네프스카야(류바) 집안의 농노였다. 농노 해방으로 아버지와 다른 신분을 가진 로파힌은 똑똑했고 사업 수완도 좋아 큰 부를 이룬다. 반면 귀족 생활의 타성에 젖은 류바 집안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 집안이 몰락해가는 과정에서 로파힌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 결국 류바의 집과 땅이 경매로 넘어가고 로파힌이 낙찰을 받는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농노 해방이 늦었던 러시아는 그만큼 경제 성장도 더뎠다. 농노들의 낮은 의욕으로 생산성은 낮았고, 노동력이 농노제에 묶여 산업화도 늦었기 때문이다.

전도연(오른쪽)과 박해수가 주연한 LG아트센터 '벚꽃동산' 공연 사진. LG아트센터

전도연(오른쪽)과 박해수가 주연한 LG아트센터 '벚꽃동산' 공연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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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은 체호프의 희곡 중 오늘날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 중 하나다. 농노 사회의 잔재가 남아있는 벚꽃동산의 사회적 배경이 빈부 격차로 인해 계급화된 현대 사회를 비추는 은유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자 마이클 앨버터스는 최근 국내 출간된 저서 '랜드 파워'에서 토지가 역사적으로 지녀온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힘을 짚는다. 그는 토지의 소유계층이 지배적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고 주장한다. 랜드 파워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가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에서는 부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집과 땅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하나의 권력처럼 작동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질 수 있을지 여부가 이슈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과도한 부동산 소유 문제를 지적하면서다.


일각에서는 과거 정책 실패를 근거로 정부의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동산 집중이 낳는 부작용이 이미 심각한 만큼, 이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심화한 부동산 집중이 낳는 부작용은 다양하다.


비생산적 부문으로 자본이 쏠리며 생산성이 저하되고, 가계부채 증가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자산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 전반의 갈등으로 확산한다. 한국 사회가 과도한 경쟁과 노동에 시달리는 '피로사회'가 된 것 역시 부동산 문제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시장에 맡기면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시장은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만능은 아니다.


서울 일부 지역의 천문학적 집값을 별도의 시장으로 간주하고, 이를 기준으로 정책을 수립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무책임해 보인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인접 지역으로 확산하며 주택 가격과 전월세를 끌어올리고, 이는 다시 상가 임대료와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공동체 전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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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별도의 시장으로 인정해 사회를 극단적으로 1%와 99%로 나눈다면, 과연 1%는 온전히 만족할 수 있을까. 1% 안에서도 또 다른 1%를 향한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날 것이다. 결국 1%는 0.01%와 0.99%로 다시 쪼개질 뿐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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