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간 협상력 차이
2·3차 협력사로 내려올수록 정책 효과 반감
외국계 기업에 납품 협력사, '사각 지대'
정치권도 보완 입법…업계 '집행력 강화' 강조

편집자주국회는 산업 경쟁력 강화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각종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현장에서 곧바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경제는 '입법과 현실 사이' 시리즈를 통해 제도 시행 이후 산업 현장에서 나타나는 실무적 한계를 짚고, 정치권 보완 과제를 살펴본다.

"원가 올랐다고 납품 단가도 올려달라고 말 꺼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칫 대기업이 다시 입찰하자고 하면, 결국 더 낮은 가격에 입찰을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입법과 현실 사이 ①]"원가 올라도 입도 못 뗀다"… 납품대금연동제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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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 반도체 부품을 납품하는 A사 임원은 23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원가를 반영해 단가 조정을 요구할 권리가 법적으로는 있지만 거래선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하청기업에서 먼저 적극 나서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원자재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할 경우 납품 단가를 조정하도록 한 '납품대금연동제'는 2024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중소 협력업체가 원가 상승 부담을 떠안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자동차 부품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물업체 B사 관계자는 "대기업이 1차 협력사에 단가를 올려줘도 2·3차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배달 사고'가 난다"고 했다. 이어 "1차 업체에 인상 폭을 물으면 영업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할수록 미운털이 박혀서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제도 시행 이후 개선된 부분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하위 협력사로 갈수록 효과가 약해지고, 외국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협력사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도 실효성 강화를 위한 보완 입법에 나섰다. 연동 대상에 전력·가스 등 에너지 비용을 포함하고, 연동제를 피하기 위한 단기 쪼개기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연동 합의 강요 금지' 규정도 법안에 명시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공포돼 올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입법과 현실 사이 ①]"원가 올라도 입도 못 뗀다"… 납품대금연동제 실효성 의문 원본보기 아이콘

산업계에서는 현행법에 규정을 추가하는 방식보다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집행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상 구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조성된 만큼 단순히 규정을 촘촘히 만드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의 가장 큰 한계는 하청기업이 먼저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구조에 있다. 법에는 분쟁 조정이나 납품대금 조정 신청, 실태조사 등의 수많은 모니터링·제재 수단이 규정돼 있지만, 중소기업은 거래 단절을 우려해 공론화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법적으로는 '미연동 합의 강요 금지' 등 불이익 제공이 제한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보다 우회적인 방식의 압박이 이뤄진다. 재입찰을 유도해 거래를 끊거나 발주 물량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식,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예외 조항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제도는 당사자 간 미연동 합의를 한 경우를 비롯해 단기 계약, 소액 거래, 소기업 거래 등에 대해 연동 적용을 예외로 두고 있다. 단기 계약의 경우 '쪼개기 계약 금지' 규정으로 최근 보완이 이뤄졌지만, 소액 거래나 소기업 거래는 여전히 제도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실제로는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간 거래에만 제한적으로 작동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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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납품대금 지급 명령 등 행정 조치의 범위와 요건을 명확히 규정해 분쟁조정의 실효성을 높이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송 의원은 "힘의 불균형이 큰 구조에서는 시장 자율에만 맡겨서는 공정한 거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어렵다"며 "정부가 실효성 있게 시정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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