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두고 전세 살면 '갭투기꾼'
실수요·투기 경계 흐릿
'투기 프레임' 만으론 집값 안정 한계
공급 확대·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 등 필요

[초동시각]다주택자 이어 비거주 1주택자도 규제…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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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에 아파트를 보유한 40대 회사원 A씨는 그 집을 전세로 내주고,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 대치동에서 전세로 거주하고 있다. 은퇴한 70대 B씨 부부는 손주 돌봄을 위해 자녀와 합가하며 기존 주택을 전세로 내놨다. 30대 C씨는 직장 이동으로 경기도 집은 전세로 주고 서울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이 세 사례는 지인과 그의 남동생, 부모 이야기다. 지인 친정 식구는 공교롭게도 가족 모두 최근 정부가 규제 대상으로 예고한 '비거주 1주택자'에 해당한다. 그만큼 주변에서 흔한 사례다. 지인은 "가족 모두 하루아침에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잠재적 갭투기꾼으로 취급받게 됐다"며 씁쓸해했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규제 범위를 넓히고 있다. 다주택자를 겨냥했던 규제의 칼끝은 이제 비거주 1주택자로 향하는 흐름이다. 이들에 대한 보유세 개편과 전세대출 규제 등 다양한 압박 수단이 거론되며 '투기적 비거주 1주택자'란 새로운 개념까지 등장했다. 투자 수요와 과도한 레버리지가 주택 시장 불안을 키운 측면은 있지만 최근 논의 흐름은 집 한 채가 전부인 평범한 국민까지 규제 대상으로 편입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현실은 정책 프레임처럼 단순하지 않다. 직장 이동, 부모 봉양, 자녀 교육 등으로 거주와 소유가 분리된 경우는 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8년 보유한 분당 아파트를 내놨지만 매각 전까진 직장 문제로 비거주 1주택자다. 내 집을 세놓고 남의 집에 세살이 하는 국민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

정부 역시 이런 현실을 감안해 규제 예외를 검토하고 있다. 규제가 지나치게 넓어지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정부도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외 규정이 마련돼도 국민의 다양한 사정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자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 둔 이들에겐 실수요와 투기의 경계도 모호하다.


만약 눌려 있던 집값이 혹여 다시 상승한다면 다음 타깃은 누가 될까. 규제 사정권이 다주택자, 비거주 1주택자까지 확대되면서 시장 일각에선 언젠가 핵심지 1주택 보유 자체가 불이익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집값 안정을 위해선 결국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도시는 공급이 제한적인 데다 일자리 이동과 인구 유동성이 커 임대 비중이 높고 주거비 부담도 크게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주택 소유에 대한 규제 부담이 커질 경우 보유 유인이 약화되며 시장이 임대 중심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이다. 뉴욕시 자가 보유율은 약 30%로 서울(48%)보다 낮고, 임대 시장은 기업이 주도한다. 맨해튼에선 원룸 월세가 4000달러(약 600만원)를 훌쩍 넘고, 높은 임대료에도 임차인 간 입주 경쟁이 치열하다. 임대료 인상폭을 제한하는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도 존재하지만 전반적인 주거비 부담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집값보다 임대료 부담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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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민간 임대 공급을 담당하는 다주택자를 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비거주 1주택자까지 투기 프레임으로 묶는 접근 방식이 해법은 아니다. 장기적인 주택 공급 확대와 안정적인 임대 시장 구축, 실수요 거래 숨통을 틔우는 금융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규제만으로는 집값 안정을 달성할 수 없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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