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펀드런' 올까…사모대출 시장 어디로
미국서 사모신용대출 펀드 환매 요청 급증
유동성·자산 미스매치 구조에 환매 대응 한계
"위기 아닌 성장통" 시각도…국내 영향은 아직
미국에서 사모신용대출 펀드에 환매 요청이 늘어나면서 '펀드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림자금융'이라는 오명까지 나오면서 구조적 신용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아직 위험 단계는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급격하게 성장한 시장이 겪는 '성장통'이며 주 수요층인 인공지능(AI) 산업에서 막대한 투자가 필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1분기에만 100억달러 환매 요청
18일 주요 외신 및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블랙스톤·블랙록·클리프워터·모건스탠리 등 주요 운용사의 사모대출 펀드에서 발생한 환매 요청 규모는 100억달러(약 15조원)를 웃돈다.
환매 압력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빠르게 높아졌다. 미국 핀테크 기업 아이캐피탈에 따르면 비상장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의 지난해 3분기 평균 환매율은 순자산가치(NAV) 대비 1.6% 수준이었다. 이후 같은 해 4분기에 이미 4.8%로 급등했다. 통상 펀드의 환매 한도인 5% 선에 근접한 수준이다.
BDC는 펀드 자산 절반 이상을 비상장 벤처기업 등에 분산투자하는 일종의 공모 펀드다. 리츠가 부동산 자산을 쪼개 투자하고 배당을 지급한다면, BDC는 비상장 기업 대출에 투자한 자산으로 배당을 지급하는 점에서 유사하다. 최근 사모대출펀드 환매 사태를 촉발시킨 블루아울캐피탈의 OBDC II 펀드도 비상장 BDC다.
미국 금융업계에서도 경고가 나오고 있다. 모건스탠리 분석팀은 최근 발간한 분석 보고서에서 인공지능(AI) 기술 진보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파괴적으로 재편하면서 '다이렉트렌딩' 부도율이 8%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이렉트렌딩은 사모대출펀드가 중소·중견기업에 직접 대출을 해주는 형태를 뜻한다. 보고서는 소프트웨어 섹터 내의 높은 레버리지(부채 의존도)와 곧 다가올 '만기 장벽'이 부도율을 코로나19 팬데믹(사회적 대유행) 이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 발전으로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구독료 기반의 안정적 수익구조가 흔들리고, 담보가치가 내려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모대출 전문 운용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존 지토 아폴로 공동 사장 겸 신용부문 책임자도 최근 UBS 고객 대상 강연에서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인수한 AI 및 소프트웨어 업계의 자산가치 평가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 기업들이 잘못된 자산가치로 사모대출을 받으면서 향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다만 "이는 사모 대출 시장 전체의 붕괴가 아니라 부실한 운용사와 자산이 걸러지는 과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급성장한 데 따른 진통이라는 의미다. 대체투자시장 분석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세계 사모대출 시장 운용자산(AUM) 규모는 2020년 1조2204억달러(약 1775조원)에서 지난해 2조2801억달러(추정치)로 불어났다. 2030년에는 4조5040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동성 미스매치 악순환 이어질 수도
대규모 환매 요청에 취약한 것은 사모대출의 구조적 한계로 꼽힌다. 장기·비유동 대출자산에 투자하기 때문에 환매 요청이 들어오는 대로 대출을 회수할 수 없는, 유동성과 자산의 구조적 '미스매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빗발치는 환매 요청을 통제할 수 없으면 더욱 악순환에 빠지는 문제점도 있다. 우량 자산이나 먼저 회수 가능한 대출부터 처분하면서 펀드의 수익성과 규모가 쪼그라드는 것이다. 이후 남은 자산의 질이 떨어지면서 추가 환매 압력에 더 취약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현상)과 펀드런 모두 기본적으로 늦으면 투자금이 0원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출발한다"며 "구조적으로 유동성 미스매치가 있는 데다 시장 심리에도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블랙스톤의 대응도 이러한 심리 확산을 차단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지난 3일 블랙스톤의 사모대출 펀드에 38억달러의 환매 요청이 접수됐다. 전체 펀드 자산의 7.9%에 해당하는 규모다. 블랙스톤은 분기 환매 한도 5%를 7%로 늘리는 한편 0.9%를 회사와 경영진이 출자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환매 한도를 늘리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달래고, 자체 자산도 투입하면서 신뢰를 쌓으려는 의도다.
"과도한 공포심리 경계해야"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금융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사모대출 펀드는 애초에 환매 조건이 통상 분기 단위로 길기 때문에 은행 뱅크런처럼 하루 만에 유동성 위기로 번지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 불안을 키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의 발언도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다이먼 CEO는 사모대출 환매 사태를 두고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발언으로 불안감이 증폭됐지만 시장에서는 순수한 '우려'라기보다는 이해관계가 반영된 발언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한국 진출 외국계 자산운용사 임원은 "사모대출이 뛰어든 미들마켓과 레버리지바이아웃(LBO) 금융 등은 원래 은행이 강했던 부분"이라며 "사모대출이 쪼그라들면 가장 웃는 것은 은행이고, 미국 최대은행인 JP모건이 과거 금융위기에서처럼 가격이 저렴해진 자산을 쓸어 담으면서 막대한 이득을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국내 운용사 대표도 "다이먼 CEO를 직접 만났을 때 거시경제나 국제 정세, 시장 상황 등에 관해 묻자 무척 따분해하면서 예정된 미팅 시간보다 한참 이르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며 "본인은 금리가 내려도, 금리가 올라도 수익을 봐야 하는 사람이라며 돈 버는 얘기 말고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전했다.
국내 영향은 제한적…"펀더멘털 훼손 아냐"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해외 사모대출 투자를 확대해온 만큼 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4일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하면서 리스크 관리 강화를 당부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주요 12개 증권사의 해외 사모대출펀드 국내 투자자 판매 잔액은 2023년 11조8000억원가량에서 지난해 말 17조원으로 증가했다. 국내 투자자는 대부분 연기금·공제회, 법인 등이다. 개인 판매잔액은 같은 기간 1154억원에서 4797억원으로 약 3.2배 불었다.
다만 국내까지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일부 미국 업체의 이중담보 대출 등 사모대출 문제가 부각됐지만 전반적으로 대출 자산의 펀더멘털이 훼손됐다고 보진 않는다"며 "추이를 보겠지만 중간 환매 요청 등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자체적인 사모대출 위기는 가능성이 극히 낮다. 국내에서도 일부 사모펀드운용사(PEF)에서 기업 대출을 하는 사모신용펀드를 만들었지만 전체 자산 규모에 비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미국에서 문제된 BDC의 경우 아직 출범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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