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 '미신고 집회' 처벌 난항…수사국 전건 지휘
헌재, 일률적인 처벌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
경찰청, 미신고 집회 수사국 전건 보고 방침
현행규정 유지하되 위험성 따져 불송치 판단
'미신고 옥외집회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경찰이 관련 사건을 본청 수사국에서 전건 지휘하는 대응체계를 가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선에선 헌재 판단으로 '집회의 자유'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6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각 시도경찰청에 미신고 옥외집회 개최 사건이 발생하면 접수 단계부터 본청 수사국으로 전건 보고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사건을 종결할 때도 위험성 여부 등을 따져 본청에서 직접 수사를 지휘하겠다는 방침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이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최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벌이다 강제 퇴거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조용준 기자
헌재는 지난달 26일 사전에 신고하지 않은 옥외집회를 예외 없이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했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 등 청구인 3명이 자신들에게 적용된 집시법 규정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판단이다. 집시법 제6조에 따르면 옥외집회·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행사 30일 전부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같은 법 제22조는 이를 어기거나 금지를 통고한 집회·시위를 주최한 자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 판단은 처벌조항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침해의 최소성'에 위배되지 않도록 형벌권 행사를 유보하는 예외 조항을 둬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이번 판단으로 공공의 질서·안정을 위해 옥외집회를 사전에 신고하도록 한 규정까지 무력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찰청은 시도청에 하달한 지시에서 형벌조항에 대한 헌재 판단이 기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된다고 지적하면서도, 헌재 결정을 존중해 기본권·공공질서 침해 위험성이 없는 경우 '불송치 검토'하도록 했다. 수사 자체는 법 개정 시한이 도래하는 내년 8월까지 현행 규정을 적용한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의 위험성과 공공질서 침해 여부 등을 경찰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현장마다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며 "불필요한 위헌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본청 차원에서 통일된 판단 기준을 만들기 위해 전건 보고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본청 차원에서 전건 지휘에 나선 만큼 경찰은 미신고 집회의 '위험성'을 보다 세밀하게 따질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집회 신고 유무에 따른 형식적 판단이 아니라 인원·목적·일시·장소·방법·행위·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지침이 공유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채증한 자료 외에도 관련 유튜브 영상 등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위험성을 검토할 방침이다.
개정 시한까지 현행 규정이 계속 적용되기 때문에 모든 미신고 옥외집회가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 형벌이 가능하다. 검찰도 개정 시한까지 현행을 유지하되, 위험성이 없는 경우에만 불기소 검토하기로 했다. 경찰은 지난달 말 기준 집시법상 미신고 집회 개최 사건 32건을 수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화가 나서 바로 취소했다" 넷플릭스 구독 해지하...
집회·시위 등을 관리하는 일선 정보경찰들은 헌재 판단으로 '집회의 자유'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 정보과 직원은 "불법성만 없으면 불송치 종결되니 사전에 집회 신고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 아니냐"며 "집회를 사전에 신고하도록 한 조항을 무력화한 판단으로 경찰의 시민 안전 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